며칠전 레지오 마리애(샛별 쁘레시디움)의 주회를 마치고 마악 소피아 자매의 집 현관을 나설 때였다. 거지 노인이 대문을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주회 중에도 심심해 하던 다섯살짜리 아가타가 끝나자마자 집에 가자고 조르는 바람에 단원 중에 팔을 다친 아이가 있는 집을 방문하자는 단장 체칠리아자매의 말을 뒤로 하고 나와 같이 갈 다리아 자매를 잠깐 기다리고 서있었다. 그 시간이 5분쯤 되었을까? 아니면 3분? 나를 바라보던 거지노인의 표정이 험상궂어졌다. 나는 비켜서며『이 집주인이 아닌데요』하고 낮은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그 노인은 집주인도 아닌데 왜 버티고서 있느냐』고 화를 내며 현관문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이세요?』소피아 자매의 물음.
『쌀 좀 보태 주시오』노인의 대답.
『얘. ○○야. 쌀 좀 가져다 드려라』
『고맙습니다』
노인은 쌀을 준 주인에 대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나오며 나에게 눈을 부라리며 악의에 찬 소리로. 『집주인도 아닌게 왜 버티고 서있어. 잘나지도 못한게 왜 턱버티고 서있어?』했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나는 얼떨떨해서『버티고 서 있은게 아니라 내가 줘야할지 집주인이 주게 둬야할지를 잠시 생각해 본것 뿐』이라는 말을 했으나 노인은 타인을「지옥」처럼 경계하는 눈을 부라리며 대문을 나갔다. 뒤따라나온 다리아 자매가 수치감으로 얼굴이 붉어진 나를『저런 사람들은 입에서 나오는대로 아무 욕이나 해요. 개의치 말아요』라고 위로했으나 불쾌감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내가 버티고 서 있거나 잘나지도 못했으면서 잘난척을 한것은 아니었다.
나의 지갑에는 10원짜리동전 10개와 천원짜리 몇장이 있었다. 나는 그 노인을 본 순간 10원짜리 10개를 주어 보낼까 생각했었다. 적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주인에게 받아가게 두는 것이 좋을것 같다는 판단아래 비켜섰던 것이다. 미천한 나같은 인간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내가 하필 거지 노인 앞에서 잘난척을 할만큼 어리석단 말인가. 천원짜리 한장을 주었더라면 그 노인은 고마우신 아주머니라고 굽실절을 하고 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진실히 네게 이르노니 미소한 형제중에 하나에게 베푼것 모두가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오ㆍ25장)
복음도 읽었고 성가도 불렀는데 나는 그 노인이 남의 대문을 들어서 현관까지 들어가는 것이 못마땅했던 게 사실이다.
그런 나에 비해 왜 현관까지 들어왔느냐는 말도 하지않고 선선히 쌀을 준 소피아 자매의 굶주린 사람을 형제로 대접하는 아름다운 표양앞에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종일 언짢아 견딜 수가 없었다. 노인이 본디 욕장이는 아니니라. 불구 노인이라고 살기 싫거나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구걸로 연명하는 것일 것이다. 노인의 콤플렉스. 그렇게라도 살아야하는 노인에게 대부분의 나와 같은 타인은 적일 것이다.
멸시를 받지 않아도 멸시를 받는 것같은 자격지심과 자기만 의지할곳 없이 못하는데서 남들이 밉게 보이기도할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을위해 주모경을 10번 바쳤다. 노인의 비참한생태가 조금이라도 호전되도록 주님께서 도와 주십사는 바람을 담아. 레지오단원이 아니었다면 잘못을 뉘우치기는 했지만 노인을 위해 주모경을 바치지는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느 어머니보다 큰 고통을 참아 주님의 인류구속 사업완수를 도우셨던 성모님의 순명과 희생의 자세를 백분의 일이라도 본받자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적어도 로사리오 기도를 5단씩은 바치고있기 때문에 비록 희생을 기꺼이하는 德까지는 못가졌지만 나를 별까닭 없는 오해로 크게 욕한 거지노인을 위해 기도를 바친것이다.
희생은 말보다 실천이 어렵다. 예수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숱한 오해와 멸시와 고통을 생각하면 내가 그 노인에게 얻어먹은 욕은 가벼운 것이다. 그날의 나의 十字架는 굶주린 이웃을 돕는데 선선하지 못한 닫힌 마음이었다.
주님께서 나의 「이웃사랑」에 제대로 길들여지지 못한 옹졸함을 깨우쳐 주시기 위해 그날 거지 노인의 욕을 마련하신 것인지도 모른다. 두고 두고 부끄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다.
조그만 일상생활에 깊은 뜻을 심어 주시는 주님과 성모님을 알고 生의 中心으로 모시며 사는 더없는 행복에 절로 화살기도가 나온다.
『저 아직도 어리오니 예수ㆍ마리아. 키워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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