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했다. 분명 그 지푸라기는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의 구명과는 별무관계 인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지푸라기에 도박을 거는 것이다.
어느덧 가을도 막바지.
떨어지는 낙엽소리에 고독을 느끼며 휑하니 빈듯한 가슴 한구석을 채우기위해 산과 들을 찾는 사람들도 어지간히 많으리라. 그래서 그런지 이때 쯤이면 성당에 미사 참석하는 신자들도 줄게 마련이다. 미사에 참석자가 줄어들면 자연적으로 헌금이 줄어든다. 그러나 가만히보니 늘어나는 것이 있다. 미사예물이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입학시험 때가 다가온 것이다.
『우리 아들 일류대학에 들어가도록…』
내가 뭐 대학교수나 되나?
『우리 애가 긴장하지 않도록…』
내가 뭐 시험 감독관이나 되나?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하면서도 받아둘 수 밖에…
시험때가 되면 미사예물이 늘어나는 것은 비단 우리 교회뿐은 아닐 것이다.
절의 佛錢도 늘어날 것이고 미아리 고개에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易理연구소(?)도 한몫 단단히 볼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만이 갖는 작은 믿음일까? 아니면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본능일까?
그러나 여기 작은 믿음이 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누구하나 그 여학생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그 여학생은 오다가다 성체앞에 조용히 머물고 있는 것이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그 여학생에게 나는 언젠가
『너 본명이 뭐지?』
물은 적이있다. 내 딴에는 꽤나 다정하게 물었는데도 타고난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만의 세계에 침범을 받은 느낌이 들어서인지、대뜸 당돌한 거부 반응이 온다.
『신자가 아니면 성당에 들어갈 수 없나요?』
아차! 실수했구나…내 귀여운 친구들이 옆에 있었다면 분명
『당신 실수한거야』
하며 놀려 대었으리라. 여하튼 나는 예수님 덕분에 그 여학생과 하루에 한번씩 데이트(?)를 하는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
그는 기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더구나 성체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다만 조용하고 아담한 성당 분위기가 고3 특유의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을 다소나마 가라앉혀 주기 때문에 자주 찾는단다. 이제 금상첨화 격으로 다정히 맞아주는 오빠(?)가 생겼으니 더 좋을 수밖에…(이것은 착각인지도?)
며칠전 그 란(여학생의 이름)이가 수줍은 듯이 내게 조그만 선물 꾸러미를 건네 주었다.
『이게 뭐지?』
『밀크 로-숀이예요』
『이건 왜?』
『내 손을 잡아주시는 신부님의 손이 까칠 까칠하게 터졌어요. 이거 열심히 바르셔서 좀 더 부드러운 손으로 잡아 주세요』
군복무 시절 동상에 걸렸던 내 손이 발각된 것이다. 그런데 문득 몸에 바르는 것을 선물로 받으면 바를때 마다 생각나기 때문에 여자가 몸에 바르는 것을 주지 말라던 어느 선배님의 말씀이 생각났지만 기쁜 마음으로 로-숀 애용가가 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란은 말했다.
『하느님이 계신지、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난 몰라요. 그러나 나를 좋아하는、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신부님이 계시고 그 신부님이 하느님을 믿으신다니 나도 한번 믿어볼래요』
나는 오늘도 좀더 따스한 손길을 란에게 주기 위해 로-숀을 열심히 바르며 그의 작은 믿음을 위해 기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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