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학교의 가톨릭 학생회에서는 매주마다 주보를 발행한다.
오늘도 연중 제 31주일 수요일을 맞이하여 여의도 신앙대회에서 본 십자가의 이적에 대해 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신앙의 신비 그리고 하느님의 지혜 등에 관해 몇 자 적었었다.
그런데、대부분의 외교인 즉 비그리스도인학생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았고 어떤 잘 아는 후배 녀석은 농담으로 『무슨 그런 황당무계한 얘기를 쓰느냐』고 했다. 심지어 식당 테이블위에서 갈기갈기 찢어진 주보를 보았을땐 매우 심정이 착잡했다. 그것은 고의성이 농후했고、내 생각으론 아마 어느 편견에 가득찬 학생이『뭐 이런 미친 놈이 있나?』하고 흥분하여 찢어버린 것같다.
신앙의 행위에는 많은 기적이 따른다. 그것이 신앙의 기적이든 아니면 인간적 신념에 의한 치유이든 일어난 기적의 예를 많이 보고 돌아왔다. 안수에 의한 병 치유의 기적을 나 스스로도 잘 믿지 않을려는 경향이 있으니 다른 비그리스도인이야 오죽하랴. 질병의 치유는 기적이라기보다는 우연이며 스스로의 신념에 의한 치유라고 내 자신이 그렇게 믿고 있다.
질병도 자꾸 아프다고 생각하면 진짜 아프게 되는 것이고 낫는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낫게 되는 일반병리의 예를 보아도 이런 기적은 보통 부정된다. 그렇지만 신앙고백에 의하면 가령 오혜령님의 경우와 같이 신앙과 기도의 힘으로 치유된 전형적 예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분들은 자신있게 자신의 질환이-심지어 죽음직전까지 악화된 빌병까지도-치유된 까닭을 하느님의 능력과 자비로 여기며 이웃들에게 이 사람의 체험을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한번은 나를 직접적으로 성당으로 이끈 계기가 된、잊지 못할 그 신비의 체험임 천사를 보내주신 주님의 일을 번듯이 잡지에 발표했고、또 오늘은 학교에서 발행되는 주보를 통해 여의도에 나타난 십자가의 이적、그것도 두차례나 내눈으로 직접 목격한 기적을 공표(公表) 한 사실말이다.
첫번째 기적은 별로 남들 앞에 얘기하지는 않지만 일부 개신교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해 줬을 때엔 그들은 매우 감동적인것 같았지만 내가 지난해 예비자교리를 받을 때 신앙의 입교동기를 얘기하라길래 이 이야기를 했더니 별로 느낌을 받는것 같지 않았고 가장 절친한 친구까지도 우연성을 강조했다. 내가 기도한 그시각에 친구 P가 나타난 거 전혀 우연의 일치라는 논리이다. 사실 우연일 수가 있다.
그 친구가 나타나기 직전 하느님께 바친 기도도 우연일 수가 있고 어쩌다 우연이 일치되어 기도가 들어진 것처럼 착각할 수도 있다.
두번째의 기적 역시 십자가가 하늘에 나타난 건 우연한 하늘의 현상이며-하기야 내 글을 읽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고 보지않고 어떻게 믿느냐고 웃어 넘겼다-광장후면「와서 보시오」란 글 위에 세워져 있던 푸른나무 십자가가 빛을 발한 것은 환각에 의해서본 환영(illusion)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내 생각은 전혀 다르다. 첫번째 기적은 아무리 우연의 일치라도 그렇게 시간적으로 절묘하게 연속되는 일치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다. 물론 불가능하다는 것과 백만분의 일이라도 확률적으로 있을수 있다는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나의 체험 즉-
-적어도 3개월 이상을 고통과 절망 그리고 실의속에 방황하고 번뇌하다 그날 밤 정말 절대절명의 비장한 마음 가운데 마지막 남은 지푸라기- 내가 물에 빠진 경우에 빗대어-인 하느님을 찾고 내게 天使를 보내주십시오란 단 한마디 절규에 연속되어 내 실험실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친구 P의 등장-그것도 2주일전에 부산엘 갔다가 급거 상경(上京)、이날밤 이 시각에 웬지 내게 오고 싶더라는 친구의 말에 부연하여-그때까지 약 1개월간 되지않던 실험이、전공이 전혀 다른 그친구의 약손(?) 이 닿았을 때 갑자기 성공적이 되어버린 실험、그리고 이날 기쁨에 겨워 밤을 새웠던 사실、그리하여 그 다음 주일 정말 감사의 눈물로 미사에 참례하였고 석사학위를 무사히 수여받으며 다음해 그러니까 지난해(80년) 6월 29일 영세받기 전까지 예비자 교리 기간동안 느꼈던 그 천상의 기쁜순간들-이일련의 사건들은 정말 기적이라고 밖에 할말이 없다. 기도에 응답하여 천사가 보내진 것으로 나는 굳게 믿고 있지만 친구들이 믿지 않아도 좋다. 다만 이 체험으로 인하여 내게는 신앙이 계속 자리할 수 있었고 더군다나 교수님과의 갈등、전공과 적성에 회의ㆍ휴학 등 일련의 내 신상의 변동 가운데도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기뻐하며 주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 낙관적 견해와 인생관이 내게 확고히 자리잡게 된 것은 오로지 신앙의 기적、아니 신앙의 힘이 아니고 다른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두번째 기적은 보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아도 좋지만 나는 벌써 큰 기적을 두번이나 체험했다는 교만스러운(?) 큰 은총 덕택에 정말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생각에 내가 일상(日常) 속에서 늘 범하고 또 범하는 온갖 유혹과 죄악에 몸둘 바를 모르겠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육욕에 정신팔고 本分에 불성실하며、크지는 않지만 조그만 거짓을 늘 일삼는 죄인이 그 큰 사랑앞에 또 무엇을 바라랴?
바라는게 있다면 이런기적 같은 우연들을、아니 우연 같은 신비를 비그리스도인들 특히 종교에 대해 매우편견을 가진 무신론적인 동료들에게 신앙의 참의미를 일깨워주며 그들이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이 인간에의해 투사(投射)되며 만들어진神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 살아계시며 바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사랑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 수 있는 슬기와 용기를 내게 달라는것과 그것이 不可하면 주님이신 당신이 그들에게 몸소 작용하시어 그들에게도 당신을 나타내시어 나와 함께 당신을 찬미하며 내가 겪은 체험들이 기적이 아니라、또한 기적 같은 우연이 아니라、우연한 환상이 아니라 바로 살아계신 하느님의 사랑이심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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