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2월에 있었던 숭전대학교의 졸업식에서 나는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졸업식은 강당을 겸하고 있는 교내 채플에서 거행되었는데 분위기는 자뭇 진지하고 엄숙했다.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간간이 나를 향햐 플래쉬를 터뜨리던 몇몇 보도진의 카메라가 우등상을 위하여 내가 단상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약간의 소음으로 식장의 무거운 분위기를 깨며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4년을 두고 드나들던 채플이었지만 단상에 올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위 학생은…』
읽기를 다하자 학장님께서는 상장을 내게 건내주셨다. 상장을 받아들고 단상을 막 물러나려 하는데 웬 우람찬 손하나가 와서 내손을 덥석 잡는다.
『축하하네』
하는 음성을 들어보니 김현남 이사장님이었다.
이사장님께서는 나를 그곳에 세워둔채 내 아내를 불러올리시더니 내조를 잘한 공이라하며 기념품까지 전달해 주시는 친절을 보이셨다.
마침 나의 졸업식을 며칠 앞두고 아내는 첫 아들을 낳았다. 졸업식에 참석키 위해 고향에서 올라온 가족들에게는 이중의 기쁨이었다.
졸업식이 끝난 뒤 수줍은듯 TV카메라 앞에 서계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불현듯 맹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있었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방문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그 날도 나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교정을 한바퀴 돌아볼 양으로 기숙사 모퉁이를 막 돌아 나오고 있었다.
기숙사를 향해 바쁜 걸음을 옮기시던 어머니께서 나를 발견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내게 달려 와 와락 껴안으며 『종천아』한 마디 하시더니 이내 왈칵 울음을 터뜨리시는 어머니였다. 그것이 어머니로서는 첫번 서울 나들이였다. 어쩌면 어머니께서도 철부지 어린시절부터 서울을 꿈에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작 그 꿈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은 남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서울 구경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천리 밖에 유학보낸 나어린 눈먼 자식을 찾는 모정의 서러운 발길이었으니 슬픈 여인의 운명이라고나 할까?
맹학교 중에서는 제일 낫다고 하는 국립 서울맹학교에 나를 보내 놓고도 또한 열심히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도 『저 자식이 과연 남들처럼 떳떳이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인가?』하는 일말의 근심을 가족들로서는 뇌리에서 완전히 떨쳐 버릴 수는 없었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여러통의 편지와 여러시간의 대화들 만으로서는 충분히 다할 수 없었던 그러한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확고하게 제시한 셈이었다. 그동안 나로 인하여 과중한 짐에 시달려온 가족들에게 졸업장과 상장을 선물로 드릴 수 있게된 것이 나로서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나는 지금껏 가족들의 그릇된 장애자관으로 해서 어려움을 당해야만 했던 너무나도 많은 동료맹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아 왔다.
시력을 잃었을 뿐으로 사지가 멀쩡한 맹인을 남부끄럽다하여 바깥출입을 금하게 함으로써 이중 삼중의 장애를 들씌우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수용시설 같은데 보내놓고는 몇 년이 지나도록 찾을 줄을 모르는 가정이있다. 장애자를 가족으로 둔 데 대한 수치심과 열등감에는 혈육의 정마저도 파괴해 버리는 무서운 힘이 있는가 보다.
예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어린 아이를 토굴에 넣어 기르더라는 보도는 모든 이를 경악케 했다. 그러나 사실인즉 장애자 가족들의 무지와 편견은 비단 이들에 한하는 문제가 아니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모든 장애자가 감수해야 하는 설상가상적의 괴로움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맹인으로서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나 할까? 나의 가족들은 되도록이면 나를 이해해 주려고 애썼고 내 뒷바라지를 위하여는 갖은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러한 가족을 곁에 두고 있는한 나의 지난날이 역경이요 가시 발길이었다고 말할 수 만은 결코 없으리라.
오늘 이 조그만 성공만 하더라도 그것은 전적으로 가족들과 나를 도와준 몇몇 친우들에 의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들에게 다시 한번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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