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매달 둘째 셋째 수요일이 되면 나는 봉성체를 떠난다. 나를 만나는 것이 하느님이라도 만나는 듯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그리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운반하는 Porter가 되는 것이다.
『우리 신부님 얼굴 좀 보았으면 좋겠다. 목소리는 좋은데…그런데 목소리 좋은 사람은 대개 얼굴이 못났다던데…』꺼칠한 내 손을 만지시며 자문자답 하시는 90노형의 실명하신 할머니.
커피 유익본을 펴시면서 매일 석잔 이상의 커피를 마셔야 한다면서 남의 기호와는 무관하게 둠뿍 설탕을 쳐주시는 (나는 블랙 커피 애호가) 고집이 세신 커피 할머니.
굳이 당신 앞에서 담배 한대를 피우고 가야만 한다는 담배 할머니、그래서 나는 성체를 모시고 담배를 태워야 하는 불경죄(?)를 범하게 된다. 그래도 그할머니는 봉성체 후에 금방 떠나는 나를 더 잡아두기 위하여 골육지책으로 짜내신 아이디어이니 기꺼이 따를 수 밖에.
삼대 거짓말중의 하나인「늙으면 죽어야지」를 수 없이 되뇌이면서도 몸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필요이상으로 엄살을 떠시는 엄살 할머니.
어느새 나는 이 할머니들이 소중하게 느껴지고 좀 더 오래 사시어(적어도 내가 이 본당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나를 벗해 주셨으면 하는 이기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동반하며 어느집을 들어섰다. 나를 안내하시던 반장님이 헐레벌떡 뛰어 나오시며 그냥 가자고 하신다. 그 집은 간경화증에다가 여러가지 합병이 되어 얼굴은 이미 까맣게 변색되었고 거동조차 못하시는 50대의 남자 교우분이 계신 집이었다. 평소에도 퉁명스러웠지만 그래도 가끔 고백성사까지 보시던 분이셨기에 의아해 하면서 만류하시는 반장님을 뿌리치고 방문에 들어서는 순간『야! 임마 네가 술값 줬니?』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왔을까? 불호령과 함께 퍼붓는 욕설들 (그것은 군시절에서나 듣는 욕들이 었다) 아찔한 기분에 나도 모르게 뛰쳐나와 정신을 차리고 아주머니에게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큰 실수를(?) 하긴했다. 나는 그분이 알코올 중독자인 줄 모르고 지난번 왔을 때 성체를 영해드리면서 술을 적게 드시라고 해드린 기억이 난다. 술을 밥보다 더 좋아하시는 분에게 금주명령(?)을 내렸으니 더구나 술값 한번 안주는 피래미 신부가…
유난히도 가난하게 살던 집이었다. 나이 어린 두 아들이 공장에 가서 벌어오는 20여만 원의 돈중에서 반이상을 술값으로 탕진하는 그에게 신부가 금주명령을 내렸기로서니…화가 머리끝까지 치밀기도 하고 심한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유난히 술을 좋아하시던 내 아버지 생각이났다. 술을 들지 않으면 안되는 그분의 심사를 나는 모르리라. 더구나 나는 술을 입에대지도 못하니까『더 큰 실수 한거야』생각하며 다시 문을 열었더니 다시 불호령이다.
그래도 나는『아저씨 제가 필요하거든 다시 부르세요. 빨리 부르시기를 바라겠어요. 아저씨는 저를 필요 없다고 하시지만 저는 아저씨가 필요 하거든요』그래 분명히 아저씨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필요 한거야. 계속되는 불호령의 여운을 들으면서 유난히도 지대가 높던 그 집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무거울 수 밖에. 벌써 두달이 지났는데…다음달에는 술값이라도 가지고 다시 한번 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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