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쓸까? 시간은 자꾸 가는데 글솜씨 없는 내게 이 란을 청탁한 기자가 원망스럽기 조차하다. 바로 그순간
『딩동댕』
누굴까? 혹시 내게 이야기거리라도 주는 사람일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보니 생전 처음보는 수녀님 한 분이 문앞에서 서성거리신다.
『저 말씀좀 여쭙겠는데、경 신부님이세요?』
『그렇습니다만…여하튼 들어오세요』응접실을 안내하는 내 뒤에 서서
『신부님 혹시 떡볶이 소녀를 기억 하시는지요?』
『뭐요? 떡볶이 소녀? 내가 떡볶이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알고 놀려대누』
순간 뇌리에 스치는 것이 있다. 그래 있었다. 몇 명 안되는 우리반을 떠들썩(?)하게 했던 떡볶이 소녀사건.
그러니까 그때가 77년도 봄이었던가? 성소주일 백일장을 대신학교 운동장에서 실시하던 날이다.
준비위원으로 숨가쁘게 뛰어다니던 와중에서 나는 느티나무 밑에 넋을 잃고 앉아 있는 한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처량한 생각에 지나가는 말로『너 밥 먹었니?』했더니『안 먹었어요. 좀 사주시겠어요?』하지 않는가? 약간은 당황하였지만 나는 그 소녀를 대리고 가서 떡볶이를 사줄 수밖에.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오후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에 소녀는 다른 신학생을 통해 내게『활활 타오르는 사제 되소서』하며 예쁜 초를 남기고 갔다. 「떡볶이 소녀」라는 이름과 함께.
그러나 내가 아직도 그 소녀를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이후의 편지 때문이다. 수차에 걸친 그의 편지는 당돌하면서도 귀여운 소녀의 꿈이 서려있는、그러면서도 의문투성이의 세상을 앙징스럽게 원망하는 내용 들이었다. 그러나 더욱 대견스러웠던 것은 한번도 내게 답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스스로 해답을 찾겠노라고 발신주소를 밝혀 두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몇번이나 신학교에 찾아와 먼발치 서나마 내 뒷보습을 보았노라며『언제 어디서든 내게 감시(?)하고 있으니 한눈 팔지 말고 훌륭한 신부님이 되어 주세요. 언젠나 숙녀가 되어 신부님 앞에 나타나겠어요』하는 내용과 함께 일방적으로 소식을 끊었던 떡볶이 소녀.
나는 그때 그가 귀엽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한편 꼬마가 성숙한체 하는 행동이 괘씸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맑고 순수한 소녀의 마음이 길이 간직되기를 기도 했었다.
그 소녀가 이제 어엿한 숙녀가 아닌 고운 수녀가 되어 내앞에 나타난 것이다. 『신부님、그때는 정말 고마웠어요. 엄마의 강요에 못이겨 백일장에 참석은 하였지만 누구하나 거들떠 보지않는 것이 짜증이 났었거든요. 그런 순간에 신부님이 걸려드신거예요. 신부님은 아마 그냥 지나가는 말씀으로 건네셨겠지만 저는 찬스를 잡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1백원어치의 떡볶이가 내 생의 전환점을 이룬것 이예요』
기묘한 인연으로 만난 소녀와 신학생이 수녀와 신부가 되어 다시 만나다니 하느님은 참 묘하신 분이로구나. 떡볶이로써 聖召를 하시다니.
시간 가는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우리 떡볶이 먹으러갈까?』하는 내말에 『그래요 신부님、우리 떡볶이 먹으러가요』하고 대답하는 수녀님의 눈빛、그것은 바로 그때 그 눈빛이었다. 씩씩거리며 매운 떡볶이들 먹는 신부와 수녀. 하느님 외에 그누가 우리의 사연을 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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