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연시가 되면 세속에서도 불우이웃돕기가 심심찮게 매스콤에 오르 내린다.
우리 교회에서도 예외는 아니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 신자들 이라면 이웃을 돕는데도 순서가 있어야 하겠기에 이렇게 졸필을 들어본다.
여기 아버지와 세아들이있다. 어쩌다 둘째 아들이 사업에 실패하여 무척 곤란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셋째 아들이 둘째를 도와줘 둘째가 다시 잘 살게 되었다면 이것은 일거양득, 아니 일거삼득이 아닌가 생각된다.
왜냐하면 첫째로, 천주십계를 잠시 살펴보자. 상삼계(上三誡)는 천주를 위한 계명이고 하칠계(下七誡)는 인간의 계명이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을 줄 믿는다
인간계명중 첫째가 부모에 대한 계명이다. 이 계명은 그만큼 중요하고 힘들기에 지혜로운 주님께서 인간계명중에 첫째에 넣은 것이라고 나는 판단하고 싶다.
그러니 셋째가 사업에 실패한 둘째를 도왔지만 이것은 곧 부모에게 효도한 셈이된다 둘쨰가 사업에 실패한 것을 부모들은 자나깨나 걱정했을 것은 사실이 아니겠는가? 셋째의 도움으로 다시 잘 살게된 둘째를 볼 때 부모들의 기쁨을 어찌 말로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둘째로,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좋아질는지 그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밑기고
셋째로, 우리 신자들이 꼭 맛보아야 할 기쁨이 남아있다 받는 기쁨보다 주는기쁨, 바로 이것이 참된 사랑인것이다.
이세상에 억만장자라도 쓰고 남는 돈은 없다. 사업에 실패한 둘째를 도울때도 셋째 아들이 쓰고 남은돈으로 도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움을 받은 둘째의기쁨보다 도움을 베푼 셋째의 기쁨을 우리 신자들은 맛봐야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눈에 보이는 형제까지 아옹다옹 하면서 교회내 행사에 참석하여 고아원엘 간다, 양로원엘 간다하는 것은 잠깐 반성 해봐야 될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이웃을 돕는 데도 순서가 있다. 내집안 형제중에 끼니를 걱정하는 형제가 있는데 화려하게 차려입고 양로원에 위문간다면 모순이 아니겠는가?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물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를 묻어두고 형제를 도울 때 바로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참 사랑이 아닌가한다.
『용기를 내시오, 그리고 실천하시오 거기에 참 기쁨이 있습니다』꼭 물질적 도움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부자의 금화보다 과부의 동전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하느님은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또 형제끼리 우애깊고 화기에 찬 생활을 한다면 외인들에게 좋은 표양이 되어 전교에도 한 몫을 차지하니 이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너무 계산적인지 모르지만 사랑의 실천에 몇가지 이익이 있는지 한번쯤 계산해보자.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