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해에도 낮과 밤이 갈라져 있듯이 낮과 밤 그 자체에도 무수한 토막이 마디 처럼 이어져 있음이 분명 하다. 그러니 1년 3백65일이 하루같이 꼭 같을수야 있을까마는 그래도 비오는 날과 눈이 내리는 날이 가끔 있기 때문에 변덕이 심한 날씨라고 투덜 칠수도 있으나 거기에다 폭풍이라도 함께 밀어 닥치는 날이면 그 때는 영낙없이 서리맞은 풀잎 꼴이 되고 만다.
기상이 이러는데 하물며 비좁은 속알 머리 밖에는 지닌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랴. 그러니 어지간한 사람이면 아침에 먹은 마음이 한 나절이면 변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래도 사람이야 하느님의 피조물(被造物)인데 그 마음이 무턱대놓고 고양이 눈빛처럼 수시로 변하기야 할까마는 가끔은 까닭 없이 모든 것이 즐겁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이 짜증스럽고 싫증이 날 때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꽤 무던한 성격이던 K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슬금슬금 후퇴를 거듭하더니 「미사」에도 나오지를 않고 점점 냉담 해져버린다.
『회장님! 무엇때문에 저를 이토록 괴롭입니까? 이제 모든것이 싫어졌읍니다. 회장님까지도요. 그러니 어서 돌아가주세요』
세번째로 찾아나섰던 나는 문전에서 씁쓰레한 입맛만 삼키고 그냥 돌아서고 말았다. 모든 것이 주관적(主觀的)인 심리작용(心理作用)에서 결정 되어 그것이 자신의 눈에 그대로 비친다고 하더니, 정말 K는 이상한 안경을 잘못 쓴탓인지 이제는 친구도 몰라 본다.
생각할수록 괘심하고 화가 치밀어 올라서 침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더니 충격적인 사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애들의 이모인 아가씨가 아버지로부터 선물로 받은 「비밀 트렁크」를 드디어 열었다는 것이다.
금고(金庫)처럼「다이얼」까지 달린 이 어마무시한 비밀 장치(秘密裝置)의 가방은 본인만이 마음대로 번호를 바꿀수가 있으나 남들은 절대로 열수 없 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것을 처체는 그만 그 바꾼 번호를 잊어버렸으니 이제 이 가방은 영영 열수가 없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가방을 열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열었단 말인가? 아침부터 밤까지 삼단계인 「다이얼」을 차례로 「제로」 단위에서 천(千)단위까지 무려 2천번 이상을 맞추어 나갔다는것이다. 『찰까닥!』2천 몇 백 번만에 절대로 열 수가 없었던 이 「비밀 트렁크」가 찰까닥하고 열렸던 것이다.
인내(忍耐)의 연속, 끈덕진 노력이, 그것도 연약한 아가씨에 의해서 실행으로 옮겨 졌으며 그렇게 위력을 자랑하던 비밀 장치도 결국 사람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K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혀 줄 수있는 열화(熱火)같은 사랑과 끈덕진 노력이 졔속 필요 했던 것이다.
나는 번뜩이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치는것을 결코 놓치는 않았다.
결국 끈덕진 그사랑에는 반드시 보람이 있을 것임을 「비밀다이얼」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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