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곳 (경남밀양)에서 7년 가까이 교직에 종사하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만둔 것이 벌써 4년여이다 그동안에 물금 (경남 양산)과 부산 등지를 거쳐 이곳 진주로 오게 된 것도 어느새 2년반이 넘었다. 물금과 부산 초량에서 교회에 봉직했고 개인 회사(부산)에도 다녔으며 진주에 와서는 학원의 전임강사와 현재의 신협경남도지부 교도원으로 봉사하는 등 몇 해 동안 나의 생활엔 변화가 적지 않았다. 그새 나이도 먹어 불혹을 넘긴지가 이미 오래다. 지금도 패기만은 님 못지않다고 자부하지만 지난날에는 모든 것을 내가 잘난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었다. 전혀 신앙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주님보다 자신을 앞세우거나 내세우는 나쁜 습벽을 가졌었다. 자랄 때 너무 칭찬만 받고 자란탓일터였다. 게다가 재주깨나 좀 있었고 하니 유아독존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지난날의 그러하던 내가 얼마나 미워지는지 모른다. 진주에 왔을 때가 79년도였다. 봉곡동성당이 막 준공되고 난 뒤였다. 당시 강영구 신부님의 배려로 주일날 교리를 가르치게 되었다. 처음엔 일반고등학생을 상대로 하다가 예비자교리반으로 성격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밀양에서 꾸리아 단장을 지낸 경력 때문에 이곳 꾸리아에서는 부단장이 되었다.
그런데 내가 다녀본 지역 중에서 이곳만큼 열성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데는 보지 못했다. 봉곡성당의 예를 들면 주일미사 참예자수가 4백명 내외인데 레지오 마리에 쁘레시디움이 성인 16개에다 소년 6개로서 2백명의 단원을 가지고 있다. 그들 중에는 열성적으로 사도직 활동을 하는 단원이 반수 정도이다. 다른 곳에서는 내가 아주 맹렬 분자에 속했는데 여기선 나 같은 것은 겨우 수계나 하고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실로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는 요즘 그들의 열성 때문에 활동은 제대로 못하지만 신앙심은 꽤나 깊어졌다. 이것을 좋은 의미의 타산지석(他山之石) 이라 해야 할까? 기도로라도 때우자는 생각을 한 것이다. 기도니 신앙심이니 하는 것도 따지자면 자신을 위하고 내 가족을 위하는 취지가 앞서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 확실히 모든 것은 주님께서 주관하신다는 확신이 섰다. 그렇게 되고 보니 마음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믿음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려는 생각을 나와 우리 가족들이 하게 된 것은 우리가 너무나 무력한 존재임을 이제 조금 깨달은 까닭이었다. 「인간의 뜻대로 되는 것은 한가지도 없다. 하느님만이 세상사를 섭리하시고 결정하신다」 이것을 비로소 확실히 체험한 것이다. 이 점을 주님께 감사드린다.
세상이나 인간은 믿을 것이 못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 반면에 오직 하느님 밖에 믿을 분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게 지금 같은 신앙이 없었다면 어찌 되었을까? 만일 하느님을 내가 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찔한 생각이 든다. 그랬다면 아마 나는 벌써 죽었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살아 유와 삶의 의의를 모르고살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요즘 늘 감사하면서 생활한다. 즐거우면 즐거우니까 감사하고 괴로우면 또 괴로운대로 감사한다. 지난달 대전에 교육을 갔다가 치질이 걸려 고생할 때 그것을 주님의십자가상 고통에 견주면서, 감사했다. 조그마한 아픔을 통해 거룩하신 주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기쁨을 맛보려 했던 것이다. 그분의 가난과 겸손과 인내심이 나를 매료시키고 있다. 요즘 같으면 죽음이 내게 닥칠지라도 나는 감사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재처럼 가난한 때도, 어려운 시기도 내겐 없건만, 오로지 주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사는 재미로 나는 기쁘다. 이 기쁨 주님께 갈 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모든 것은 주님께서 다 섭리하시는 것으로 굳게 믿사오니 주여 이 기쁨을, 이 감사함을 제게서 언제까지라도 앗아가지 마읍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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