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노 수사님! 그 분과의 우정의 교류도 어느덧 8개 성상이 흘렀나보다.
삼복 더위가 한창일 무렵-전남 녹동에 계시는 신부님의 축일 행사에 고전무용 출연을 의뢰받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 성당에서 뵈었던 그분의 첫인상은 실례가 될 정도로 한량없는 웃음을 자아내게 해 주었다. 빈틈없이 꽉 짜여진 열굴과 작은 체구, 그리고 하얀 와이샤쓰와 어색한 짤막한 바지가 왜 그렇게 우스웠던지 모른다. 게다가 상하의 모두가 오랫동안 세탁되지 않은듯이 얼룩이 가득했었지만, 왠지 그 모습에서 수도자다운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분은 이태리인으로서 20년간을 한국인과 더불어 살며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몸소 실천해왔다. 현재는 서울 돈보스꼬 청소년 센타에서 기술을 가르치신다. 언어 구사력은 한국인 뺨칠 정도로 능수능란하시어 농담이나 속담까지도 즐겨 사용하시곤 한다.
6년전 어느 추운 겨울날 수사님이 계시는 서울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거센 바람도 아랑곳하지않고 허술한 옷차림으로 손수 한 병의 우유를 사오시어 정성으로 대접해주시던 자상한 수고로움에 나는 저절로 머리 숙여질 뿐이었다. 그분은 철저한 시간관념으로 생활의 테두리속에서 늘 숨가쁘게 피로에 절인채로 봉사와 헌신의 생을 살아가시는듯 하였다. 항상 하느님과 더불어 생활하시는 그분의 눈망울을 대할 때마다 저절로 숙연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조국도 아닌 타국에서 피가 다른 민족에게 그토록 무한한 사랑을 심어주시는 그분께 무한한 찬사를 보내드리고 싶다. 언젠가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셨는가를 물었더니『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벌써 이십년이 되었으니 강산이 두번 바뀌었다』는 재치 넘친 말씀으로 나를 놀라게 했었다.
소년시절, 처음으로 고향을 떠난 뒤 이곳 한국의 생활이 익숙해질 때까진 마치 부모님의 슬하를 떠나는 아기의 심정과도 같았다면서 지난 일을 회고하기도 하셨다.
현재 그 분이 지닌 수척한 얼굴과 주름진 이마가 인생의 훈장처럼 일생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얼마 전 11월말경 업무관계로 부산에 오신 걸음에 나를 방문해 주신 수사님과 모처럼의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수사님의 우울한 면의 노출을 보고 무척 당황한 나였다.
한 시간의 대화의 흐름 속에서 줄곧 내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의 뭉클함을 느꼈다.
무어라 한마디 위로말씀 조차 드리지못했던 내 자신이 죄송스러웠고 버스 속에서도 줄곧 눈물을 닦아내곤 하시던 소박하고도 순수한 한 이국인의 고독함을 나는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토록 강렬한 인간성을 대하매 나도 모를 눈물이 양볼을 적셨다. 버스안의 승객도 의식하지못한 채, 바람부는 창밖의 밤풍경에 시선을 돌리곤 순간 순간의 오열을 견뎌야 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까지도 차를 바꾸어 타야하는 수사님께 아픈 내가슴을 말로 표현할수없었다
그분이 타야할 버스가 도착되었을 때, 결코 받지 않을려는 토콘을 드렸다. 순간적으로 느껴진 그분의 손길은 무척이나 차가왔다. 차가운 바람을 등진 채 돌아선 그분의 뒷모습에서 무척이나 애틋한 분위기가 감도는 듯하였다
버스는 내 곁에서 떠났다 나는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찬바람을 벗삼아 걸으며 물밀리듯 떠오르는 한없는 생각과 더불어 수사님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다.
그분의 친정어머님이 이 세상을 하직하신지 삼년이 되었지만, 친어머님보다 더욱 좋아하셨다는 한국의 양어머니 (주방에서 일하셨던 분) 조차 사별한지 두달 되셨다며 그렇게 비통해 하셨다. 불치의 병「암」인 줄 알면서도 운명하시는 그 날까지도 직접 등에 업고 이리저리 병원을 다니며 간호해 드렸다는 그 정성! 그렇게 바쁜 가운데에서도 늘 병문안을 잊지않고 기도로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는 떠나버리신 양어머님… 단념속에서도 비애에 젖어있는 그분 앞에서 억제할 수 없었던 감정들! 살아생전의 소망대로 서로가 조용히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셨기에 그래도 한가지 바람을 이루었다는데서 한가닥 미소와 안도의 숨을 쉬는듯했다. 이따금씩, 분명「신」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하시며 말끝을 맺지 못하며 자주 눈물을 훔치셨다. 어느덧 발길이 내 기숙사에 닿았을때, 난 하늘 향해 두 손 모아 엎드리어 한없이 울었다.
한 인간의 훈훈하고 아름다운 인간서에 감동된 나머지 오랜 시간 많은 생각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은 내내 기억될 것 같다.
그날따라 유난히도 밝고 빛나던 달과 별들의 합창도 수사님의 마음을 달래주진 못한 것 같았다. 한 이국인이 열어 보여준 마음의 창문은 81년이 나에게 던져준 켜다란 선물로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존재하는 사회의 어디서든지 수사님처럼 생활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한다. 서로 베풀고, 도우며, 사랑하며 사는 것이 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행복한것이 아닐까? 더욱 메말라가는 사회에 따스한 인정의 교류가 드리워지는 현실인 것같다. 겨울은 비록 추우나 하늘 향해 두 손 벌리며, 눈부신 태양을 가슴 가득히 채워 이 겨울을 따뜻이 보내야 할 것 같다.
존경하옵는 고미노 수사님. 당신의 진실됨을 결코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며, 이 땅위에서도, 하늘위에서도 하느님의 축복이 당신에게 베풀어 질것을 확신합니다. 믿는 이에겐 영원한 이별과 죽음이 없기에 만남은 먼 하늘나라에서 다시 이루어 질 것이리라. 수사님의 고독한 몸부림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기도드리며 수사님을 위해 따스한 뜨개질 선물을 마련해 드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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