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 불가사리?』
횡단로 앞에서 파란불을 기다리고 섰던 나는 코앞을 스치며 지나가는「택시」속에서 불가사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극히 짧은 순간이었고 뒤따르던 대형차에 가리어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불가사리란 나의 옛동료였던 R의 별명이다. 방금 지나간 그의 모습은 얼핏 보기에도 몸이 나보였고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점잖은 초로의 풍채였다.
우리는 젊었을때 함께 같은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런데 R이 불가사리라고 불리게 된 사연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원래 불가사리는 쇠붙이면 무엇이든지 죄다 먹어 치운다는 상상의 동물 이지만 R역시 쇠붙이를 삼키고도 거뜬히 이를 삭여낸 위인이다.
학기말고사를 끝낸 어느 날 방과후였다. 양손에 고사답안지를 잔뜩 든 채 서류 핀 두서너개를 입에 들고 계단을 내려오던 R은 잘못하여 그만 뒹굴고 말았다.
『뭣! 핀을 모조리 삼켜 버렸다구?』
양호실로 옮겨진 R은 배를 움켜쥐고 고통을 호소했다. 삼킨 핀들이 창자를 닥치는 대로 꾹꾹 찔러대며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이윽고 비명을 질러대는 R은 구급차에 실렸다.
『원장님! 사방에 핀이 꽂혀 있나요?』 엑스레이 사진을 든 채 내과 전문의 정박사는 잠시 당혹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할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이것은 내가 미국에서 가져온 아주 귀한 약인데 내장에는 전혀 손상을 주지 않고 쇠붙이만 녹여냅니다』
지옥에서 천사를 만난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런 일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어떻든 우리는 R과 더불어 의기양양해서 돌아왔다.
그러나 냉정을 되찾았을 때는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박사는 무지하게 덤벙대는 우리들의 꼬락서니에 당혹했던 모양이다.
특효약이라는 것도 다름 아닌 증류수에 약간의<아스피린>을 녹인 것뿐이었다고하니 말이다.
그런데도 R은 장내의 쇠붙이를 녹혀 버릴 수 있었으니 불가사리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영광스러운 관사가 붙었던 것이다.
사실은 그날 그는 처음부터 핀을 삼키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스스로 삼킨 것으로 착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도 무엇이 그토록 창자를 찔러댔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시 우리들 생활에도 이런 착각은 없을런지 모를 일이다.
왜냐하면 그날 밤 R의 할머니도, 『이 바보녀석아! 아주 쉬운 양밥이 있었는데, 생 계란을 까먹고 삼킨 것과 꼭 같은 핀을 머리위에 얹어놓고 이 주문(呪文)을 외우기만하면 눈녹듯이 스르르 녹았을건데』그러나 R은 할머니의 양밥만은 처음부터 믿지를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착각인 미신(迷信) 대신신앙(信仰)을 찾으려고 마음을 먹은 뒤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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