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한사람이 수정성당 부근에다 토용연구소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 토용탕하면 이미 낯설지 않을 만큼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 간(肝)에 좋고 고혈압에 좋고 또 무엇무엇에 좋다는 등 모르는 사람이 없다.
『용(龍)은 상상의 동물이 아닙니다요. 자, 보세요. 고생대에 서식했다는 공룡은 유골이나 골화석(骨化石)이 나왔으니까 실재했던 것으로 알고 있지만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를 않았다고 해서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요. 암! 안되고 말고요』
가게에 나와서 이런 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도 생겨날 만큼 장사도 잘되나 보였다. 여하튼 토용은 흙에 사는 용일 테니까 약효는 좋은 모양이다. 흙을 가리켜서 생명의 모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너희는 흙으로부터 왔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가리라』
새삼스럽게 창세기를 펼쳐들 필요도 없이 흙 위에서 태어났고 흙과 더불어 자라났고, 그리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 할 우리들이기에 가난한 효자가 흙속에 사는 지렁이로 병모(病母)를 구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는 웬지 가슴에 와닿는다.
『형님! 이번 성탄 때는 우리집 마당의 흙을 한줌 약봉지처럼 포장을 해서 꼭 보내주세요』
몇 년 전 브라질로 이민을 간 동생으로부터 이런 사연의 편지를 받고 눈시울을 적셨다는 내 친구가 생각난다.
그러니까 흙은 꼭 같은 흙일지라도 고향의 흙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니나보다.
그것은 아마 누구에게나 고향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믿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모처럼 성지순례를 보내놓으면 성지부근의 길바닥 흙을 마구 긁어서 종이에 싸가지고 돌아오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묘 속에 몇천 년이나 잠겨있었던 꽃씨를 꺼내 땅에 심었더니 놀랍게도 싹이 움터나왔다고 한다.
분명 흙은, 그리고 흙으로 이루어진 대지(大地)는 생명을 자라게 만들 수 있는 어머니의 따스한 품안과 같은 곳인가 보다.
그뿐이 아니다. 흙은 죽음이 남긴 추악한 껍질마저도 서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널고 깊고 끝없는 망각의 「베일」로 덮어주는 사람도 지닌다.
창세기로부터 구약시대를 거쳐 이 지상에 살다간 무수한 사람들의 죽음이 남긴 육신을 조용히 그리고 흐트럼없이 안고 간다.
나는 「흙」이라는 작품을 읽어본 적은 있었지만 감성(感性)이 모자라는 탓인지, 거기에서 어머니와 같은 사랑을 느껴보지는 못했지마는, 흙은 우리의 삶과 그리고 죽음의 고향과 같은 것일 거라고 막연한 깨달음과 그리움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아무튼 흙과 대지가 나를 저버리지 못하듯 나도 흙과 대지를 버리지 않으련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해외에 나가있는 벗들에게 가끔 고향의 모래알이나 한두개씩 편지지에 풀로 붙여서 보내줄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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