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환자, 이른바 같은 민족이요 같은 핏줄인 우리들이 문둥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치 않는 그 나환자를 단 하루만이라도 기도 중에, 미사봉헌 중에 모든 하느님의 백성이 기억하도록 성교회는 구라주일을 정해 놓고 있다.
1월 31일은 또다시 맞는 제15회 구라주일이다.
구약성서의 신명기 28장을 보면 나병은 하느님이 죄 있는 사람을 때리시는 재액(災厄)중의 재액으로 나타내고 있다. 또 출애급기 9장 민수기 12장에서도 나병을 원칙적으로 죄의 표지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이로 미뤄보면 구약의 작가들은 나병을 천벌로 봤던 것 같다.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 없는 벌이올시다. 아무 법문의 어느 조항에도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 옛날부터 사람이 지은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했다. 그러나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 없는 벌이 올시다』라고 나병환자이기에 문둥이라고 천대와 멸시를 받았던 비극의 어느 한 시인의 이 처절한 울부짖음이 있다.
이렇게 법조문에도 없고 하느님의 계명도 어긴바 없는 내 죄를 변호할 길이 없다고 가슴을 치는 슬픔의 외침을 우리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전국의 나환자수는 약 5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등록된 나환자수는 2만7천56명, 이중에서 1만3천여명이 가정이 있고 양성환자 중 4천7백여명은 수용소와 요양원에, 음성환자 9천7백24명은 97개 정착촌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중 가톨릭 신자는 약 5천명에 달하고 가톨릭 나사업가 연합회는 이들을 위해 37개 정착장을 지원하는 한편 3개의 나환자 수용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사실 사회의 편견이 아직 남아있어 사회가 이들을 영입하지 않기 때문에 정착촌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문둥이라는 말만 들으면 으례 천리만리로 도망치듯 달아나기가 일쑤이다. 부정탄다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들이 신앙을 고백하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는 그 나병환자들을 어떻게 하셨는가? 마태오 복음 8장과 마르꼬 복음1장 그리고 루까 복음 5장을 볼 것 같으면 예수는 나병자들을 깨끗이 고쳐주고 있다.
아니 고쳐주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수는 몸소 그들의 허약점을 만져주고 그들의 병고를 짊어졌던 것이다. 실상 예수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않아주고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께서 나병환자들에게 대하였던 그 역사적 사실과 복음서의 기록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띠고 공감을 주기마련이다.
나환자의 존재는 오늘날의 교회에 대하여 무엇을 의미하는가? 실제 교회가 사회로부터 백안시대 소외된 이들 나환자를 위할 뿐만 아니라 이들과 일체가 되지 않을 경우 참 교회일수 있는가하는 교회적 의문은 제기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체를 놓고 복음의 원점에 서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기성찰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작년은 「신체장애자의 해」였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교회와 더불어 우리는 그들에게 대한 메시아적 사명을 얼마만큼이나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돈 몇푼의 자선으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애덕을 실천했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에서 나환자를 위한 구라사업은 할일이 너무나 많고 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는 보다 더 적극적으로 그 사업에 힘을 경주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우리 모두가 나환자와 다 같이 그리스도 한 형제인 것을 깨닫고 그들을 위하여 구라사업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는데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다.
진정 우리는 제15회 구라주일에 즈음하여 먼저 정착촌과 요양원 그리고 정착촌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나환자들의 참된 메시아적 가치를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합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 는 없어, 성한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 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사람이올시다』라는 소리 없는 그들의 외침을 구라주일에 상기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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