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자로서의 인생행로에는 물론 어려움이 많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그 점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우선 맹인은 나다니는 일이 쉽지 않으니 자연 성당 나가기도 어려워진다. 맹인이라 해서 다리마저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가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해서 또는 남에게 보이기가 부끄럽다 하여 그 가족이 꺼려해서 성당출입을 끊은 채 한 달에 한번 봉성체로 만족하는 이들도 많고, 이러한 심리적 장벽이 문제되지 않는 경우라 하더라도 안내자 없이 혼자서 성당에 찾아가 미사참례 하기란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미사 중에 일어났다 앉았다하는 일만 하더라도 숙달되지 않은 맹인에게는 두통거리다. 모르니 옆사람들을 따라해야겠는데 옆 사람의 동작을 귀나 감각으로만 판단해야 하니 온 신경이 그리로만 쏠리게 된다. 영성체 시간에는 제대 앞까지 걸어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성당에서 혼자 영성체하러 나오는 맹인을 안내해주는 사람을 만나기가 아직까지는 그리 쉬운 일 같지 않다. 언젠가 어떤 맹인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남편은 결혼 몇 년 전에 영세를 받았으나 부인은 결혼 후 개신교를 버리고 남편을 따라 천주교로 개종하여 영세까지 받았다. 둘 다 앞을 보지 못하는지라 지팡이에 의지하여 어렵게 성당에 찾아가서 미사참례하는 것 까지는 좋은데 영성체 시간이 되면 그만 속수무책이 되고 만다. 미사에는 참례하면서도 영성체를 못하게 되자 아직까지 믿음이 강하지 못한 부인은 『천주교는 의식이 복잡하고 신자들마저 쌀쌀맞으니 맹인이 다닐 곳이 못된다』고 하면서 불평을 해오면 남편은 답변이 궁해 쩔쩔맨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사회 적응력이 약한 맹인자신이나 그 가족들 그리고 맹인에게 친절할 줄 모르는 사회 일반에게 모두 책임 있는 일이겠으나 여하간 이런 사연들로 해서 맹인의 성당 출입은 자연 뜸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독서를 통해 영적 양식을 얻는다. 그러나 점자로 된 천주교 관계서적은 대단히 귀하다. 아무리 독서를 등한히 하는 이라 하더라도 미사 참례를 하다보면 주보라도 읽게 된다. 그러나 맹인에게는 그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 맹인용 도서의 부족이야말로 맹인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 가운데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맹인은 보지 못하니 죄가 적으리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오른 눈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리고,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 던져 버려라』하신 복음말씀 때문에 그런 것 같으나 이 귀절은 죄를 경계코자 강조하여 하신 말씀이지 눈이 없고 속이 없으면 죄가 없으리라는 뜻이 아닌 것이다. 죄의 온상은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 없이 행한 신체의 동작은 죄를 성립하지 않는다. 악마는 맹인이라 해서 그 마음 안에 깃들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맹인은 항상 눈을 감고 있으니 그 심중이 고요하여 기도도 잘 될 것이라 말하는 이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맹인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의 말로서 맹인은 늘 눈을 감고 있으니 따로이 잠 잘 필요가 없다고 하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보는 이들은 한번 눈을 감음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겠지만 맹인들은 어쩌다가 마음을 정리하려고 해도 더 이상 감을 눈이 없으니 거 또한 어려운 일 같다.
맹인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더 유리한 점이라곤 도무지 있는 것 같지 않다. 있다면 다만 한 가지 그 자신의 처지가 특별히 고달픔으로 해서 교만에 흐르기보다는 자신의 나약함을 시인하고 신에게 도움을 청하기가 쉽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 있으리라.
그 누구보다도 복음을 필요로 하는 이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선교는 여러가지 면에서 정안인들에 대한 그것과 방법을 달리한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들에 대한 효과적인 선교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지난 2백년을 보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처지를 늘 안타깝게 여겨오던 우리 몇몇 맹인들은 74년이래 몇 차례의 시도 끝에 79년4월13일 「가톨릭맹인선교회」를 발족시켰다.
살레시오회의 윤루까 신부님을 지도신부로 모시고, 초대회장 이 요셉씨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 천주교의 불모지대의 하나인 맹인계의 개간을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삽을 들고 일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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