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을 「뾰죽당」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언덕에 우뚝 솟아있던 시절이다. 으레 성당은 그런 곳에 있는 줄 알았고 낮고 죄 많은 우리들은 성당길을 오르내리면서 천당과 지옥을 생각했고 높고 깊숙한 그곳엔 무서운 신부님이 계셨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모두 죄인으로 자처했으며 눈 아래 보이는 사바 세상은 마귀의 서식처요, 악의 소굴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주일간의 죄를 씻고 단단히 결심한 후에야만 성당산에서 내려오곤 하였다.
그런데 근자에 오면서 세워지는 성당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람들 속으로 주택가로 시내 중심 쪽으로 그것도 높고 뾰죽한 형태가 아니고 친근감과 시대감을 살린 새로운 모양으로서의 등장이다. 물론 그 안에 계시는 신부님도 종이호랑이가 된 분이 여럿이다. 마귀들도 어디를 갔는지 입에서 사라지고 지옥 얘기를 하면 시대에 뒤진 사람으로 제외된다.
그런가 하면 마땅히 성당이 들어서야 할 높은 곳에는 검찰청과 법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람들 속을 주택가를 시내중심가를 피해서 높고 우뚝한 곳이면 두꺼비 같은 검찰청 건물이 깃발을 나부끼며 찬란히 버티고 있다. 그곳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무수히 땀을 닦으리라.
교회의 발전 교구의 발전이란 말을 본당 숫자의 증가와 거기에 따른 성당의 건립에 연관지을 때 항상 저항감이 느껴진다. 성당건물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앙생활을 하는 하나의 수단, 더구나 물질적 수단이지 목적은 아니다라는 생각때문이다. 그런데도 본당의 지상과제는 성정건립이란 말이 부담 없이 거론되고 기도하는 모임보다 집짓기 위한 모임이 당연히 우위에 선다.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는 사제보다 건축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성직자가 더 긴요하게 인식되고… 하나의 시대적 조류일까.
『신부님 성당이 언제 완공되지요』
『그래도 신부님 성당에 들어서면 참 편안합니다』
그럴때마다 나는 항상 초조해진다. 사실은 성당건물이 옛날 면소재지의 야학교건물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의 일환으로 세워진 이곳 창원공단은 그래서 기계공업의 요람이 된 도시이지만 워낙 방대하고 넓은 공간에, 더구나 사람들이 모여살던 곳이 아니어서 유락시설 종교시설은 전무한 상태이다. 다행히 기존 공소건물이 자연부락에 있어 이를 성당으로 사용하는데 슬레이트 지붕에 흙으로 된 벽과 바닥, 1백명 정도 들어서면 이상 더 설 곳이 없어 주일이면 밖에서 미사참례하는 신자가 70~80명은 되는데도 객지에 모이는 신자들에겐 그게 그렇게 편안하고 따뜻할 수가 없단다.
그래서 나는 항상 생각한다. 하느님은 따뜻함 그 자체가 아닐까하고, 아침이면 창문을 만져주는 햇살 그 자체가 하느님의 손길이라고, 따뜻함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모일 때 그 사회는 더 밝아지고 따뜻한 눈빛을 지닌 신앙인들이 늘어날 때 본당은 곧 사랑의 공동체로 변모되고 웃고 계시는 주님을 거기서 만나는게 아닐까. 구약의 야훼님은 높고 뾰죽한 곳에 계셨는지 모른다. 그래서 신약의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모세가 들었으면 졸도해버릴 말씀을 주셨다. 하느님은 곧 아버지라고. 서두르지 말자 사랑을 다쳐가며 따뜻함을 잃어가며 집을 지으라고 주께서 부르신 건 아닐 것이다. 그렇게 자위하며 나는 오늘도 설계도를 들여다 본다.
■지금까지 부산대양공고 교장이신 황정환 선생님께서 수고해주셨습니다. 이번호부터는 마산교구 용지동 주임이신 신은근 신부님께서 집필해주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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