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가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아서 그러하기도 하려니와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이 병든 가난이 문제인 시대이다. 산업사회에서의 경제제일주의는 富의 추구를 절대화하고 돈을 신격화하는 가치상실의 시대를 가져왔다. 모든 인간은 부와 출세를 향하여 철저한 이기주의에 빠져가고 있다. 이웃을 짓밟고 말이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는 놀라운 신문보도에 접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아무런 지위도 힘도 영향력도 없는 밑바닥에 있어서 더 이상 내려다 볼 수 없는 번데기행상인 실보도인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단순히 신문에 보도된 하나의 미담으로 흘러보낼 것이 거의 틀림없다. 흑자는 번데기 행상이 자기도 먹고 살기 힘들뿐 아니라 더우기 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불구자인데 그렇게 했다니 참 기특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한편 또 흑자는 뭐 그렇게까지 할 것이 있느냐 자기나 좀 제대로 살 것이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가진 것 없는 김병구씨는 이 가난의 시대에 구원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기쁜 소식을 던져주고 있다. 미담이라기보다 오히려 어두움에 던지는 희망의 복음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삶의 비극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도 더욱 그렇다.
우리는 구약성서의 텍스트에서 고통 속에도 인간을 당혹케 하는 것 같은 하느님 계획의 계시가 있음을 배우고 있는데 (욥기46ㆍ1~6) 실은 현대에 있어서 번데기 행상인 김병구씨를 통하여 똑같은 가르침을 우리들이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모로 보나 그는 고통으로 애쓰면서도 신앙에 떠받쳐지고 그도 모르는 사이에 「하느님의 신비」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기름을 태울 때 하느님은 계속 채워주십니다. 태우지 않으면 난로는 부패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넘치게 받았으면 우리는 태워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김병구씨는 진정 하느님께서 자기와 함께 하시는 것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몇 푼의 돈을 던져주는 따위는 결코 사랑의 나눔일 수 없다. 특히 가진 자의 그러한 행위는 더욱 그러한 것이다. 사실 재산을 걸고 사랑을 나누기란 극히 힘들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인 신자들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가진 것도 없는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는 김병구씨가 사랑의 기름을 태우며 사랑을 나누는 그의 메시아적 행위야말로 사회정의 구현을 내걸고 있는 우리교회에 도전적으로 제기하는 문제라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것은 예수에게 근거하고 있는 교회의 사활이 걸린 문제제기인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신앙고백하는 그리스도교도로서 감히 김병구씨에게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또한 교회는 그에게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진지하게 통회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가 교회와 신자들에게 주는 교훈적 의미는 참으로 큰 것이다.
번데기행상을 하면서 틈만 나면 도립병원에 가서 무의탁환자를 방문하는 김병구씨와 교회가 경영하는 병원당국을 놓고 그리스도 안에서 묵상할 때 우리들에게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과연 어떤 것일까, 참으로 궁금하다.
병원을 세우던 초기는 명백히 의식되었던 사업의 목표가 시대의 변천과 상황 속에서 잃어지고 오늘날 「병원의 넋」을 찾아보기 힘들게끔 돼가는 것이 아닌지, 깊이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현대에서 병원이 지니는 가톨릭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반성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말이다.
교회는 하느님이 사랑이라는 것을 생생하게 누구에게나 알 수 있게 증거하여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과 그리스도교적 형제애로 사귐을 갖고 고통을 가난을 함께 나누는 가운데 사랑의 나눔을 끊임없이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진정 사랑은 교호의 본질이다.
충실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육체와 생활의 고통 속에서 사랑의 신비를 몸소 체험할 뿐 아니라 그 사랑을 나눠갖는 김병구씨의 신앙적 실천이 모든 그리스도의 백성에게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한 것이다.
또한 그 몸에 채찍을 맞음으로써 우리를 성하게 해주었고 그 몸에 상처를 입음으로써 우리의 병을 고쳐주었구나』라고 (이사야53ㆍ5) 외치는 예언자 이사야의 말이 김병구씨를 통하여 모든 하느님 백성의 마음에 침투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또 하느님 백성의 이름으로 고난의 종답게 살아가는 김씨의 앞날에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기를 기원해 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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