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주의 성체를 만지는 사제들의 손을 깨끗하게 보존하시며 주의 성혈을 마시는 그들의 입술을 거룩하게 지켜주시며…』 기도서에 나오는 사제들을 위한 기도의 한 대목이다. 이 맘때 쯤이면 교구마다 새로운 신부님들이 탄생된다. 사람마다 일생 중에 축복받는 날이 없으리오만 새 신부에게 보내는 축복은 그대로 축복만이 아님을 느끼며 사는데 『신 신부님, 오늘 제가 주님의 제단으로 나아갑니다. 부디 오어주십시오』정성스레 쓴 안내장을 받으면서 어느 틈에 신품 받던 날에서 멀리 떠나와 있음을 느낀다.
『신부가 되었다고 사람이 바뀌는건 아니야. 사제의 일생은 바로 맡겨진 큰 물건, 소중하게 바칠 날이 있다는 걸 잊지말게』신품 받던 날 환갑을 지난 노신부님께서 당부하신 말씀이다. 돌아보면 짧은 세월인데도 사람이 바뀐 듯한 착각 속에 빠진 것이 몇번인지 모른다.
새 신부님! 그래서 다시 착각인줄 알면서도 제가 간직해야할 말들을 기념으로 드리려합니다. 무엇보다 사제의 길에 충실하려면 평소의 마음가짐에 그 8할이 달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우리가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말… 자아를 버리고 무가되어 거기에 하느님을 채우는일, 황당무계한 듯한 이 말이 언제나 시작하는 원점인 것 같답니다.
신부란 얼마나 묘한 위치인지 여자를 멀리해도 권력을 가까이해서도 안되고 술도 멀리 가까이 돈도 멀리 가까이… 사람의 힘만으론 어쩔 수 없는 이 길을 끝까지 가려면 평소부터 그 방면의 전공자인 예수님께 기도하는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그러므로 후배신부님 나름대로 꿈을 가꾸며 정진하십시오. 그러나 결국 꿈은 꿈일 뿐 실망하지 않는 자만이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보기엔 신부님들 중에는 나이와 더불어 성장하시는 분과 퇴보하시는 두 종류의 사제가 있는 듯 합니다. 신학생 시절엔 누구라도 제 나름의 포부에 현명해 보이는 개성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이 미래와 결부되어 얼마나 아름다운 기대를 갖게 했읍니까? 그러나 일단 신품을 받고 나면 모습을 바꾸는 것 같습니다. 한분은 점점 심신의 슬기를 더해가는데 다른 한분은 추한 자아로 늙어갑니다. 마음의 연마가 그대로 두 사제의 길잡이로 남은 것이 아닐런지… 사람의 일생에도 가을은 있다고 합니다. 그 가을이 결실을 거두는 가을이 될런지 아니면 낙엽만 떨구는 가을계절에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누구 말처럼 사제의 한 평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서두르지 마시고 천천히 천천히 그분의 씨앗을 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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