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뜻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옳은 도리를 말하는 것이니 그것이 곧 양심의 율법이요 행동철학인 것이다.
여기 차원 높은 의리의 역사 한 페이지를 들추어서고 차원적인 의리의 진가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중국 고대에 등백도(鄧伯道)라는 지조 높은 선비가 있었다. 가족은 자기내의와 세살 난 아들과 또 세 살 난 조카 이렇게 네 식구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오는 큰 난리가 일어나 모두가 앞을 다퉈 피난가는 판국인데 공교롭게도 이때 등백도는 병들어 있었으므로 아이 하나를 업고 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두 아이 중에 한 아이는 부득이 적의 말발굽 아래희생의 제물로 대던져야 할 인정의 절박한 처지에 다랐던 것이다.
이러한 처지에서 보통사람으로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조카 자식을 버리고 자기 자식을 업고 피난갈 것이다. 그러나 지존 높은 선비 등백도 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등백도는 아내를 보고 『여보 형님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나셨고 그 혈통으로 저 어린 조카밖에 없지 않겠소. 우리는 아직 나이가 젊었으니 다시 자식을 낳으면 되겠지만 저 어린조카가 없어지면 형님의 혈통은 영영 끊어지고 말 거시요. 그러니 우리 자식을 버리고 저 조카자식을 업고 피난갈 수밖에 도리가 없지 않겠소』하며 간곡히 타일렀던 것이다. 등백도의 아내 역시 지존 높은 선비의 아내다운 품위가 있어서 남편의 말을 따랐던 것이다.
자기 자식을 죽음의 땅에 내던지고 조카 자식을 업고 피난 가는 장면은 실로 하늘도 울고 땅도 울고 귀신도 우는 의리가 앞서는 처절하고 장엄한 역사적인 장면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어떻게 된 일일까. 그 후 등백도는 영영 자식을 낳지 못하여 후사가 끊어졌고 업고 피난 간 조카자식으로 말미암아 형의 후사는 계승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후세의 선비들이 <슬프다 푸른 하늘아. 어찌 덕 있는 이를 어여쁘게 생각지 아니 하여 등백도로 하여금 자식을 없게 하는가>(鳴乎蒼天 胡不衛德 使鄧無兒)하여 등백도를 애도하며 하늘의 무심함을 개탄하였던 것이다.
이 등백도의 역사는 현세만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는 유교로서는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나 영생의 신앙이 있는 천주교에서 볼 때 의리를 앞세우고 사사로운 정리를 뒤로 한 등백도의 만고에 빛날 의리는 사랑의 극치를 이룬 것으로서 천상 영복의 상좌를 차지하였을 것이라 믿는다. 아- 천구죠 역사상 과연 몇 사람의 열심한 신자가 등백도의 행적을 따를 수 있을 것인지. 어떻든 동양역사상의 의리의 아름다운 일화로 전해지고 있는 등백도의 역사는 신앙인의 도량을 넓혀주는 것이기에 한번 발췌해본 것이며 아울러 신앙정신의 각 성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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