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맹인 선교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시작은 하였지만 22명의 맹인과 그 주머니로 많은 일을 계획하기란 불가능 하였다. 우리는 우선 두 달에 한 번씩의 모임을 포함하여 성지순례, 피정의 신심 행사를 마련하는 한편 「글로리아 성가집」이라고 명명한 가톨릭 성가집과 공동체 성가집을 발췌, 편집한 점자 성가집을 출판하여 전국에 보급하였다.
「글로리아」라는 이름의 점자 신앙지도 발간하였으나 예산 관계상 단 2호를 내는데 그치고 그 대신 「글로리아 메시지」라는 카세트 테이프 신앙월간지를 계속 발행해오고 있다. 맹인 선교회가 그 초기에 시작한 사업 가운데 잊을 수 없는 하나는 병원 방문 활동인가 한다. 선교회내 맹인과 정안인 회원들로 구성된 「글로리아 위문단」이 매주 한 번씩 한강 성심병원의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병실을 찾기 시작한 것은 79년 7월초순경의 일이었다.
병실 방문에 앞서 병원내 성당에서 봉헌한 첫 미사 중에 우리들은 스스로가 선택한 일이지만 과연 감당해낼 수 있을지 설레이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주고자 하나 줄 만한 것을 가지지 못한 우리의 손에 아버지께서 그것을 들려 주소서』
우리가 주로 찾은 환자들은 절단이나 마비 등으로 해서 신체장애를 입게 되었거나 또는 장기간 입원 중인 분들이었는데 병실에 들어서는 맹인들은 처음에는 의아한 듯 바라보던 그들이었으나 우리들의 방문이 거듭됨에 따라 마지못해 주고받던 몇마다 인삿말들이 점점 깊이 있는 대화로 바뀌어갔다.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 가운데는 몇 년째 병원신세를 져온 분도 있었고, 하반신 또는 전심마비의 몸으로 이제는 가정에 돌아가는 일 외에 달리 남겨놓지 않은 분들도 있었다. 한주일을 두고 별렀건만 그들 앞에 막상 서고 보면 우리는 무어라 적당한 위로의 말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라고 해야 매주 정한 시간에 그들 앞에 나타나서 밝은 표정으로 몇 마디 안부를 묻고 잠시 기도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런 보잘것없는 행위를 통해서도 하느님은 때때로 위대한 역사를 이루시어 우리를 격려해주곤 하셨다. 퇴원을 며칠 앞두고 그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들을 보니 이제 좀 살 것 같아요. 사고로 허리를 다친 뒤 하반신이 마비되었는데 막내는 아직도 국민학교 코흘리개에요. 이렇게 되고 보니 도무지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앞을 못 보면서도 이렇게 남을 위해 봉사활동을 다하면서 밝게 사시는 걸 보니 나도 이제 용기가 나는 것 같아요』
사도 바오로는
『내가 갇혀있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달라』
고 필립비인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위의 말씀을 설명의 경우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실명자 자신의 고달픔이야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의 처지가 주위사람들에게 이득을 가져다 주는 경우가 있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초기의 내 열정에는 자못 대단한 바가 있었다. 그때 나는 보행법이 익숙지 못한 데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혼자서 미사에 참례하곤 했었다. 그러니 그때 그러한 나의 열성은 전부가 나 자신의 일임에 기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어느 날 아침 미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아주머니들의 주고 받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 학생을 좀 봐요. 보지도 못하면서 매일 아침 미사참례를 빠뜨리지 않으니 우리같은 사람들이 부끄럽지 않아요?』
맹인을 대할 때 사람들은 무심결에 그 맹인이 말도 알아듣지 못하는 양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아주머니들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분들의 말소리는 내 귀에 분명히 들려왔고 그 뒤론 그들을 실망시킬 수가 없어 더욱더 미사참례에 열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 경우 그분들의 열심을 촉구하기 위하여 바쳐진 나의 실명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그날부터 싹이 터서 내 마음에 자리 잡은 한 가지 깨달음을 실명이 이 사회를 밝히는 보다 큰 광명으로 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둠속에서 환이 타오르는 빛, 그 빛을 뒷박으로 덮어두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환자 찾는 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주일도 거르지 않고 지팡이와 환자들의 기다림에 의지하여 지난 2년 반 동안을 계속해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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