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부인은 올해 57세. 작은 몸매에 유난히 맑은 눈을 가졌다. 어린 시절의 꿈은 수녀님이 되는 게 전부였던 여인이다. 거제도 외현이라면 박해를 피해온 이름 없는 순교자의 후손들이 모여 만든 동네이다.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 위엔 지금도 등대 모양의 공소 건물이 있고 주민의 대부분이 신자들이다. K부인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 밑에서 교리를 배웠고 30리가 넘는 본당에는 1년에 두 번 부활과 성탄에 산을 넘어 갔었다. 그때의 추억을 얘기할라치면 지금도 눈빛은 소녀가 된다. 1930년대 일제의 착취에 견딜 수 없어 사람들은 일본으로 건너갔고 부인 가족도 「오오사까」의 썰렁한 거리에 오게 되었다.
재일동포의 출발이다 그러했듯이 냉대와 몰인정 속에서 위안과 용기는 신앙만이 동무해 주었다. 성서의 꿈은 그곳에서 현실화 되었고 어느 평소의 무서운 수녀님이 그녀를 불렀고 수녀원에서 경영하는 여학교에 입학을 주선해 주었다. 꿈에만 그리던 공부, 환상의 나라에만 머물던 수녀의 꿈이 손에 잡히는 저쪽에 있는 듯했었다. 학교를 졸업할 나이가 되면서 혼담이 오갔다. 성소의 가장 큰 장애물은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했었던가. 아버지의 완고한 고집은 부인의 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석달을 집안에 가두었다. 외출도, 면회도, 성당에도 못가게 했다. 어느 날 밤 부인은 장문의 편지를 남기고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는데…방을 나서면서 이게 마지막이다 싶어 잠든 어머니의 얼굴이라도 보려고 몸을 굽히다 그만 북바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니가 깨시고 아버지가 깨시고, 편지가 증가가 되어 가출이 탄로났다.
『그 뒤 나는 이름도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과 혼인을 했단다.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도 채 못됐던 것 같아. 여자의 일생 중 자기 뜻대로 되는 일이 몇 번이나 있겠더냐. 절망에 빠진 나를 남편 사랑으로 받아 주고 삶의 의욕을 애정으로 밀어줬지만 미움의 깊이는 더해갔단다』
남편과 2년을 살았지만 부모에 대한 원망과 성소에 대한 좌절이 모두 그 남자에게 있다고 부인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피해망상증이란 벌레가 부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모두를 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벗꽃이 활짝 핀 어느 날 부인은 일본에 있는게 죽기보다 더 어려웠고 그래서 밀함선에 몸을 싣고 한국으로 건너왔다. 충무 땅에서 소학교 동창생을 만나 절망을 이기기 위해 공사판의 막노동을 했는데 한국으로 건너간 부인을 찾으러 바다를 건너다 남편이 탄 배가 물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나 콘 죄를 지은 여자인지 그때 알았다. 평생을 살아도 속죄하지 못하리라 느꼈지. 신앙이 없었으면 자살했을 거라. 그러다 너의 아버지를 만났다. 결혼에 실패하고 절망에 빠진 남자였었다』
대신학교에 입학하던 날 어머니는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셨다. 사람마다 자식에 대한 애착이 없으리오만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내겐 어머니가 두 사람의 몫을 해줬다. 일생을 통해서 두 번 결혼을 하고 두 번 다 남편을 잃은 나의 어머니. 자신의 꿈을 자식에게서 이루셨지만 눈감는 그날까지 또 얼마나 기도해야 하실까. 자세는 그래서 한편으론 불효자 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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