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브 도래의 명화집에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의 장면이 있다. 때묻고 먼지 끼고 크고 냄새나는 발을, 물대야를 들고 오셔서 씻기시는 모습이다. 덥석부리 베드로는 예수님이 무릎을 꿇은 채 자기 발을 닦아주고 있는 모습이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그림이다.
요한복음 13장의 이 장면을 신학생시절에 꽤나 흥분하며 읽곤 했었다. 주님의 그 겸손된 모습이 감동 이상으로 가슴에 닿곤 했었다. 신부되어 몇 년이 지나면서 나는 도저히 주님처럼 물대야를 들 위인이 못 된다는 건 깨달았는데…가끔씩 베드로의 위치가 될 때는 더러 있었다. 교리를 잘 합니다. 강론이 예리합니다. 강의는 정말 훌륭했습니다. 주님께서 신자들을 통해 나를 씻어 주실 때 나는 당연히 그런 듯이 덥석덥석 대야에다 발을 담근 적이 몇 번인지 모른다.
인간이 건방지면 절대로 구원 못 받는다는 말이 있다. 내 친구 중에 종신서원을 한 수사님이 계시는데 삼발에 노루 같은 친구였다. 독특한 개성과 천진난만함 때문에 사랑도 받고 오해도 곧잘 받았는데 어떻게 너같이 모난 돌이 수사님이 되었냐고 물었더니 묘한 대답을 했다. 자기는 수도원에 들어가서 1년간을 쓰레기통만 비우면서 살았단다. 바닥으로 내려가는 연습, 남들이 싫어하는 궂은일을 통해서 자신을 비우는 일에 익숙하게 되었단다. 손바닥을 펴면 손에 가득 찬다는 말처럼 각고 끝에 마음을 비울 수 있었으리라. 때문에 하느님이 그를 채워주셨으리라 믿는다.
성서의 인물 가운데는 인생의 바닥을 체험한 분들이 참 많다. 특별히 구약성서 안에는 그러한 인물들로 꽉 찬 느낌인데 그중에서도 야곱의 아들 요셉을 나는 좋아한다.
그는 사제로서 익혀야 할 인간적 성숙함이, 두드러진 사람이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었고 그래서 아버지의 집념 같은 편애를 받지만 흔들리지 않는 감정의 소유자였다. 결국 이복형제들로부터 질투의 제물이 되어 은 20개에 팔리는 몸이 되지만 비관하지 않는다. 에집트의 보디갈집에서 호남자였던 그가 부인으로부터 수차례 유혹을 받지만 완강히 거절한다. 여차했으면 제비족의 시초가 될 뻔한 그였지만 기회주의자도 이중인격자도 아닌 그였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대할 때면 언제나 옷깃이 여며진다. 나로서는 도저히 못오를 나무처럼 여겨져서 말이다. 무고하게 감옥에 갇혀 죽을 날을 기다리면서도 절망하지 않았던 그, 그래서 항상 늦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거기서 만나고 에집트의 재상까지 오른 요셉, 사람마다 그릇이 있다면 그는 확실히 큰 그릇이다. 보디발도 그의 부인도 용서로써 받아들이고 형제들도 다시 맞아들인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주님은 이 큰 그릇 요셉의 얘기를 양부(養父)인 요셉에게서 들으면서 자라셨을 거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절대로 수하 사람의 발을 씻어주지 못한다.
용감한 장군 밑에 용감한 군사 모이고 졸렬한 장수 밑엔 간신배가 우글거리듯이 주님의 이 아름다운 표양은 탁한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밝은 빛인 것만 같다. 사순절이 다가온다. 성주간 목요일이면 주님은 또 말없이 내 발을 씻어주실테지. 이번에는 좀 부끄러워 할 줄 알자. 해마다 뻔뻔스러워지는 나를 이번 사순절에는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는 트리이닝에 집어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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