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무수히 많은 것들을 잊어가고 있다. 친했던 친구의 생일을 쉽게 잊어가는 것처럼. 너무나 많은 문명의 이기(利器) 속에 묻혀 살기 때문일까? 내가 잊어가는 그 많은 것들이 섭섭하고 서운할 따름인데…
요새 인터넷에서 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모교사랑」(www.iloveschool.co.kr)이라는 사이트는 자꾸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기억을 끌어올리는 오래된 우물같은 곳이다. 이것은 첨단화되어 가는 물질 문명에 대한 의구심과 나이와 비례하여 점점 커져만 가는 망각의 시간 사이의 간격을 놀라운 정도로 채워준다.
그러나 이처럼 경이(警異)로운 문명에서 느껴지는 즐거움은 자연에 한발짝 다가서는 인간의 행위에서 느껴지는 그것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보잘것 없는 것이 아닐까?
벌써 6년쯤 전의 일이다. 언니는 『비내리는 호남평야가 보고 싶다』며 여행을 가자고 했다. 서울을 벗어난다는 마음에 마냥 설레며 따라갔던 그곳은 변산의 「채석강」이었다.
물론 호남평야에 대한 감상은 내려가는 도중 기차 안에서의 것으로 그치고 말았지만 변산에 대한 인상은 매우 지배적이었다. 이미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채석강이라는 곳은 강이 아니라 절경을 이룬 절벽과 그 해안 일대를 두루 가리키는 지명이다.
중국의 이태백이 풍류를 즐기며 시를 읊다가 그 물 위에 비친 달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그것을 잡으려 뛰어들었다던 강 이상으로 그 경치가 아름답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것이 어찌 되었든 변산은 그 여름 이후로 내가 매년 한번씩은 기꺼이 찾게 되는 중요한 여행지 목록의 하나가 되었다. 그 여름 민박하던 집 마당귀에 조그맣게 피어있던 채송화가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그곳의 경치가 다른 어느 곳의 경치보다 뛰어나서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직도 그곳에서는 언니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일까?
올해 나는 아직 변산을 찾지 못했다. 처음에 말했듯 자꾸 많은 것들을 잊어가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니에 대한 그 진학고도 안타까운 기억은 「모교사랑」과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동창들을 만나듯 간편하게 길어 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조만간 소란스럽지 않게 그곳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참으로 맑은 물을 찾는 목마른 자의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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