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들으면 거짓말이라고 할 걸. 두고봐, 촬영하러 나가면 비가 딱 그칠테니까…』
하늘이 「신의 허준」을 알아보기에 필요하면 장마비도 딱 그친다는 출연진의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였다. 지난 6월 27일에 끝난 MBC 월화드라마 「허준」의 마지막 촬영현장인 빗줄기 속의 의정부 세트장에서의 그 이야기는 점심후 비가 그침으로써 「아니나 다를까」의 체험이 되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장마비가 예고된 지난 6월 25일 강원도 철원군 월정리역 광장에서 밤샘으로 가졌던 「민족화합의 새날새삶 전국 기도회」날. 월정리역 부근만이 비 한방울 없이, 그래서 준비했던 제단 비가리개를 치울 때 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만 하루를 참아준 하느님의 마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만일 비가 내렸다면 첫 순서인 「빛·소리」부터가 「비소란」으로, 전체 행사가 김추기경의 소감 말씀인 「아름다운 밤」이었다기보다 「아찔한 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덕분으로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며 고백한 것처럼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의 밤이었다는 추억을 참석한 모든 사람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오후 5시경 준비를 총점검 하면서 날씨를 보며 평화의 제단을 쌓고 미사를 드릴 제단위에 세웠던 비가리개를 치우기로 결심하였다. 정말 불안하고 고독하였다. 힘들게 만들 때는 언제고 공들여 만든 것을 치운다는 건 또 뭐고… 처음부터 촬영팀은 비가리개를 「그림이 안나온다」며 반대하였다. 신자들이 제대 위의 십자가도 주교님들도 다른 출연진도 제대로 볼 수 없음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미사를 빗속에서 드릴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양새가 나쁘더라도 설치해야 된다며 우겨서 만들었는데 치웠다가 다시 비라도 오면 무슨 낭패일까」하는 불안이 컸었다. 비가리개를 치우던 신학생의『어, 저쪽에서 검은 구름이 밀려오는데…』라는 중얼거림이 납덩이치럼 가슴에 얹혔다. 더군다나 옆에서 행사준비를 돕던 월정리 인근의 김화본당 이신부의 말은 더욱 가슴조이게 했다.
『이 지역은 새벽 2시쯤 큰 비가 오는데』96년 97년 두 번이나 물난리를 겪으며 사제관의 침수를 겼었던 사람의 말이니, 이 말을 뒤로 하고 나서는 나는 6시30분경 월정리 행사장에서 육십리 떨어진 고석정에 나갔다. 사진촬영을 전잠한 이선생을 안내하기 위해서엿다. 만나서 돌아올 때 소나기를 만났다. 와이퍼로 차창을 닦으며 월정리에서 이십리 떨어진 노동당사까지 오면서 비가리개를 치운 것이 후회막급이었다.
월정리에 도착하자마자 처음만난 이신부에게 『여기는 비 안왔느냐』고 물었다. 『여기 비 안왔는데』대답을 들으며 『아이고, 뭐가 되어갑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중얼거렸다. 이 중얼거림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자비하신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믿는 바의 체험 고백이었다.
그날, 그 믿는 바의 고백은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또 가능했을까? 그것은 같은 뜻을 가지고 준비하고 한자리에 모인 「한사람곁의 또 한사람」들의 기도로 가능하였다.
2천년 대희년이 선포되던 1999년 12월 25일부터 「민족화합의 새날새삶 전국기도회」참가자들은 매일 묵주기도, 매달 25일 미사, 50일 고리순례 성체기도, 행사전 9일기도를 하면서 준비하엿다.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지성 그리고 감천」이라는 말로 요약해주었다.
그렇다. 아들은「지 애비 닮았다」는 말을 벗어날 수 없다. 하도 망나니여서 「오늘부터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아버지가 선언해도 집 밖에 나가면 「○○의 아버지」라고 여전히 불리운다. 그렇게 아버지와 아들은 끊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어르신들은 아기의 백일이나 돌잔치에 오셔서 『그놈, 꼭 지 애비 닮았다』(창세 1,2)라고 말씀하신다. 그 말은 아버지의 얼굴 모습을 닮았다는 존재로서의 의미 뿐 아니라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관계의 의미까지 포함되는 말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생명을 같이하는, 어버지가 없으면 아들이 있음이 없고 아들이 없으면 누구의 아버지라 불릴 수 없는,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공동체, 공동운명체이다.
아버지인 우리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긍정적일까 부정적일까? 하늘에 계신 아버지처럼 자비로운가(루가 6,36). 먹을 것을 제때에 제 것을 제대로 먹여주고 있는가(마태 6,25~34). 제대로 다 알고 있는가(마태 10,30). 행여나 우리의 부정적인 아버지 모습으로 자녀들이 부정적인 하느님 아버지의 모습을 마음에 새기지나 않을까. 오늘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앞에 겸허하게 서 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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