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한 선비가 있었다. 과거를 치르는 족족 낙방만 하는 사람이었는데 하루는 자기보다 형편없이 못한 사람이 급제하는 것을 보고 졸도 승천하여 하늘의 상제에게 재판을 청구했다. 이런 불합리가 판쳐서야 되겠느냐고. 이에 상제는 이유 있다고 보고 정의의 神과 운명의 神의 술시합으로 심판을 하게 했다.
정의의 神이 많이 마시면 선비가 이기고 운명의 신이 많이 마시면 선비가 지는 것이다. 한데 운명의 神이 일곱잔을 마시는 동안 정의의 神은 석잔 밖에 못마셨다. 이에 상제 왈『지상의 세상이란 반드시 옳고 그런것이 따져지지 않는 운명이 지배하고 있음을 알아라. 하지만 정의의 神이 마신 석잔의 술도 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서는 안되느니라』중국 고담에 나오는 이 우화는 정의와 합리보다 운명과 불합리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현실을 빗댄 이야기리라.
요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면 으레 제3공화국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진다. 어떤 사람은 매일 아침 신문에서 그 이야기 읽는 낙으로 산다는 사람도 있다. 묻혀진 이야기, 베일에 가려진 사건 속에서 한 지도자의 판단력이 얼마나 엄청난 현실을 가져오는지. 구멍 뚫린 배위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내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20대 신학생 시절 당시로서는 아주 심각한 고뇌에 빠져 있었다. 결정을 못내리던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어느 노 신부님을 찾았다. 밑도 끝도 없는 내 소리를 다 들으신 노 신부님은 내 손을 잡고 성당으로 가셨다. 인간의 소리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자는 거다. 상체를 조아리며 어린 아이 모습으로 두 손을 모으는 노 신부님의 뒷 모습에서 나는 청춘을 걸어 오면서 마침내 안식을 찾은 그 모습이 웬지 부러웠다. 주일날 강론대에서 외치던 사제보다, 탁월한 언변으로 청중을 압도하던 어느 강연자보다 등을 보이며 철없는 한 젊은이를 위해 기도하시던 그 모습이 더 몸을 떨게 했던 기억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지도자는 있기 마련이고 그 지도자를 중심하여 단체는 질서를 맞추어 간다. 그러나 지도자가 앞장서 걷지 않고 사지(死地)에서도 등을 보이며 걷지 않을 때 수하 사람은 불안해 지는게 아닐까. 등을 보이며 걷는이가 드물다. 모두가 앞에 서서 내려다보며 명령 하려 드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세상사란 정말 운명이란 사다리가 일곱개나 걸린 계곡일까. 절대로 아닐 것이다. 「다 그런것」과 「좋은게 좋은」세상은 약자의 소리다. 인간이란 너무 높은 자리에 있게되면 그의 성품이 어떠 하든 간에 다른 사람들을 소홀히 여기기가 쉽다. 더구나 그 높은 자리에 오랫 동안 머물러 있게 될수록 저 밑에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개미처럼 작게 보여 그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위험스러운 생각마저 들 수 있다.
하느님과 동등한 위치의 예수님이 그 높은 자리를 내려와 스스로 천한 종의 모습을 띠시고 소외된 사람들의 스승으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신 소이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등을 보이는 이, 이웃의 고통을 자기 아픔으로 삼는 삶, 사십일간 단식을 하시며 유혹까지 받으신 주님의 모습은 사순절을 맞는 우리의 눈을 또 한번 맑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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