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드온은 여호수아와 사무엘 사이를 이어 주는 12판광 중의 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 그 곳의 토속 신앙과 끊임 없는 줄 당기기를 벌이는데 우상에 허덕일 때면 하느님은 꼭 이 민족(異民族)으로 하여금 그들을 치게 하셨다. 민족적 시련을 통해 그들의 시선을 당신께로 돌리려는 고육지책의 하나였다. 그럴 때면 으례 이스라엘은 다급한 어린애가 되었고 보다 못한 야훼께서는 구원자를 보내셨는데, 그들을 판관이라 불렀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그 판관기 6장에 나온다. 바알의 우상에 빠진 이스라엘이 보속으로 미디안의 식민 생활에 시달릴 때 민족을 구하라는 소명을 받는데 기드온은 엉뚱한 데가 많았던 모양이다.『도대체 힘 없는 내가 어떻게 민족을 구한단 말입니까』배짱을 부리며 두 번이나 승리의 증표를 요구한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듯 하느님이 그의 청을 들어 주자 의기 양양한 기드온이 수천의 군사를 모아 미디안을 치러 가는데 주님이 브레이크를 건다. 『네 마음가짐으로 봐서 너희가 승리를 거둔다면 그것은 내힘이 아니라 너희 숫자가 많아 그런 것으로 착각할 공산이 크다. 그러니 숫자를 줄여라』풀이 죽은 기드온이 결국 3백의 군사로 미디안을 치는데 대승리를 거두었다. 그제서야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못한다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체득하고 겸허한 지도자로 바뀐다는 이야기다.
2년후면 우리는 한국교회 2백주년을 맞는다. 주님 말씀이 이 땅에 뿌리 내린지 꼭 2세기가 되는 해이다. 남아 있는 우리보다 피와 땀으로, 그리고 생명을 바쳐 복음을 가꾸어준 먼저간 선조들이 더 의미있게 맞을 해인지도 모른다. 2백세 생일을 위해 산골의 작은 교회인 우리 본당도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피부로 느껴지는 2백 주년의 분위기는 너무나 세력 확장에만 치우치는 감이 없지 않은 듯 하다. 「2천교회」「5천교회」「신자 배가 운동」「2백만 신자」등등…물론 선교의 좋은 시기를 맞은 우리가 그 기념비적 사업으로 양적성장의 신기원을 마련하자는데 반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양적 성장이 곧 질적 향상이라는 착각에는 누군가 제동을 걸어야 하지 않을까. 아흔 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들판으로 나서셨던 분이 바로 우리들 스승이라면 이미 점화 된 신앙인 각자의 불꽃을 더 키우고 더 밝히는데 그 노력의 7할정도는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과거 우리는 선교의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 50년대를 전후하여 급증된, 소위 밀가루 신자들이다.
동기야 어떠하든 신앙의 문을 두드렸던 그들이 이제는 골치 아픈 냉담자의들 만의 책임일까. 문제는 바로 신자 재교육의 부족 현상이다.
마산교구에는 5만 이상의 신자에다 50명 이상의 사제들이 있다. 이 만한 인적 자원을 정예로 만들지 못한다면 그 위에 아무리 넓은 숫자를 채워도 역시 비새는 집이 될 공산이 크다.
3백의 군인으로 수천의 미디안군을 격퇴한 기드온은 자기 뒤에 서 계시는 엄청난 분의 손 길을 눈으로 확인한 행운아가 되었다. 후대의 우리들은 그 행적을 다만 전해들을 뿐이지만 엄청난 분의 손길은 오늘도 활동하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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