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면 사제관 문앞이 항상 밝아진다. 하늘색 원복에 노란 가방을 둘러 찬 유치원 꼬마들이 나팔꽃처럼 떠들어대기 때문이다. 그들의 작은 입술과 까만 눈동자들을 들여다 볼라치면 사람의 출발이 이렇듯 아름답고 깨끗한 가에 새삼 신비스러움마저 느낀다.
『신부님, 쟤들은 좋아서 날뛰지만 저가방을 놓게 하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겁니다』 유치원 입학실 날 첫애를 입학시킨 한 자모의 소리다. 한편으론 대견스러우면서도 앞 날을 생각하면 그늘이 서리는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의 육아 방법은 그 개방적인 면에서 세계에서도 손꼽힌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처럼 부모가 자식을 훈련시킨다는 의식보다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워 자유롭게 크도록 보살펴준다는 것이 일반적 태도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맞는 첫 사회는 보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우며 관용적인 것으로 봐야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학교라는 울타리를 들어서면 지나치게 경직된 사회를 접하게 된다. 유치원에서 국민학교로,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가면서 점점 더 폐쇄적이고 강압적이며 일방통행식의 교육 분위기를 거쳐나가야만 된다. 더구나 점수라는 물귀신 때문에 경쟁의 늪속에 빠져 그 좋은 개방성과 포용력이 굴절되고 변질된 모습으로 성장하는 예도 허다하다. 여기에다 정치적 환경에서 오는 요인까지 고려한다면 20년을 내다보며 어두워지는 그 자모의 표정은 꼭 경제적 원인만은 아닌듯 하다.
1964년도에 나는 소신학교(성신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그때의 입학생은 61명이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신부가 된 친구를 돌아보면 불과 13명뿐이다. 성소의 길이 어렵다는 소박한 표현도 되겠지만 받아 들이기 어려운 주변환경도 많았던 것 같다. 누구를 탓하는건 아니지만 신학교의 그늘중의 하나는 젊음이 질식 되기 쉽다는 점이다.
그러한 영향은 성직사회 뿐 아니라 교회 전반에 걸쳐있는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다. 많은 비신자 젊은이들이 교회하면 먼저 고리타분한 것으로 연상하고 신부하면 얼굴에서 책 냄새가 나는 반백의 중 늙은이를 떠올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교회내에서도 젊은이들이 모이는 청년회나 학생회는 본당재정을 갉아먹는 천덕 꾸러기로 밀려나기 십상이고 허드렛일이나 하는 힘좋은 아이들로 인정받는게 대부분의 현실이다. 그러니 자연 교회의 젊은이 수는 줄어들기 마련이고 젊은이들을 위한 유락시설이 늘어갈수록 상대적으로 더욱 감소 현상을 빚을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는 이 중요한 시기에 공부와 학교가 멍에로 남기 쉬운 오늘의 현실에서 그들에게 어린시절의 꿈과 정서를 다시 일깨워 주고 경직된 제도속에서 질식 되어 가는 젊은이들을 복음적 삶으로 인도할 소금과 빛의 역할은 역시 교회안에 있는게 아닐까. 그것은 또한 어린 사람들을 그토록 사랑했던 스승의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은 젊은 나이의 주님이었고 젊음을 지녔기에 부당한 구조를 향해 예언자적 자세를 지녔으리라. 이제 부활절이 다가온다. 부활과 영생 역시도 궁극적 의미에선 영원한 젊음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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