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자필멸(生者必滅)이요 회자정리(會者定離)를 산사람에겐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나는 사람은 헤어지기 마련이라 했지만 이렇듯 빨리 이별이 올줄은 몰랐습니다. 어디에 가시는 최선을 다하시는 신부님 되시고 영혼의 어진 목자 되시길 바랍니다만…』본당 회장님의 송별사를 들으면서 사제의 길에 숨어 있었던 또 하나의 십자가를 나는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옛말처럼 모르는 새 정이 쌓이고 헤어지는 자리엔 그것이 발길을 막는다지만 막상 본당을 이동하는 자리에 서니깐 사제이다. 갓 신부된 사랑이어서 그랬을까. 『신부님과 정붙이기 싫습니다. 이동하실 때마다 괴로운 걸요』처음 부임하였을 때 웬지 나를 피하던 어느 부인의 이야기였다.
그때는 웃음으로 받아 들였지만 경험이 담긴 말이었던 것을 이제 느낀다. 하여튼 이동하는 신부를 어떻게 보내고 맞는가를 보면 그가 신영세자인지 오래된 교우인지 구별된다는 말까지있다. 신부를 자주 보내고 맞다 모면 진달래 꽃이라도 깔아주고 싶던 처음의 마음이 체념으로 바뀌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신앙인의 길은 어려운게 사실이다.
79년도의 창원공단은 불황의 여파가 유독 심했던 지역중의 하나였다. 그래 여름 나는 공단 사목자의 한 사람으로 그 곳에 짐을 풀었는데 워낙 계획적으로 이룬 인공의 도시였던 관계로 정리된 것이라곤 쭉쭉뻗은 도로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더구나 종교시설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었으므로 자생력이 강한 개신교 조차도 이렇다할 교회 하나가 없었다. 다행히 공단 이전의 기존 마을에 공소 건물이 있었으므로 신자들과 주일미사는 봉헌할 수가 있었다.
신부에게 오복(五福)이란게 있다고 했던가. 「전입 신부복」「수녀복」「회장복」「식관복」「사무장복」신부 주변에 항상 있어야하는 사람들과의 함수 관계를 누군지는 모르지만 코믹하게 지적한 말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신설본당을 거치는 사제에게 의무감과 사명감만을 종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려해 볼 문제라고 느껴진다.
시골에 사는 내 친구 신부 하나는 면소재지에 어렵게 어렵게 새 성당을 결국 지었는데 재정적으로 한창 어려울 때 도시의 또다른 친구 신부를 찾아간적이 있었다. 마침 그날 그 친구는 비싼 장롱을 사들여 놓고 이 쪽으로 옮길까 저쪽으로 옮길까 고심하고 있더란다. 본의는 아니지만 비애감 때문에 그냥 방을 나왔다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우리는 얘기를 나눴지만 한동안 잊혀지지 않던 기억이다.
신앙인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말이 되는것 인지 잘모르겠지만 아직도 그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는 많은 이들을 접한다. 신부를 보내고 맞고 성정의 모든 것은 다만 신앙 생활의 이차적 요인들이 아닐까. 본질적 추구는 역구현일 것이다. 기쁨과 환회가 수반 되지의 쇠사슬이요 멍에이기 때문이다. 성서의 하느님은 즐겨 약자들을 취하시어 신앙으로 무장된 겁없는 강자로만 드셨다. 그러나 선택된 그들로서 본래의 위치를 망각한 자 치고 힘의 상실을 가져오지 않은자 있었던가. 부활 하신 주님은 그런 뜻에서 또 다른 은혜를 주시니 기쁜 부활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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