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을 축하한다. 주께서 참으로 부활 하셨도다. 알렐루야. 무릇 예수의 부활에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두가지 사실이있다.
첫째는 일어난 사건이요 둘째는 그 사건의 의미이다. 한국 천주교회와 그 구성원인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1980년대라는 중요 시기에 직면하고 있다. 몇해 후에 오는 교회 창립 2백주년은 물론 이려니와 선교 3세기를 향한 이 땅의 제반 정세 즉 사목적 상항,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정황은 낙관적 일수만 없는 불확실성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들의 사회적 어두움을 부활의 빛으로 조명시켜서 보려는 것이다. 이야 말로 부활 사건을 체험적으로 묵상하며 그 사건의 의미를 찾는 길이 될 것으로 믿는다.
예수의 부활은 죽은 사람이 다시 살게 되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그 보다는 오히려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가 지금 살아 있어서 하느님과 함께 있느냐 아니냐, 그리고 그가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앞에서서 우리의 갈기리을 예비 하고 있는 우리의 대표자이냐 아니냐라는 문제의 해답을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신 분이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 가운데에 영고 영광을 나타낼 때만 우리는 부활의 힘 밑에 있고 또 자기 소생에의 진실한 희망 속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의 예수 부활은 확실히 이 땅 에서 창립 2백주년을 맞는 한국 천주 교회 가야 할 앞길을 예비하고 있을 것로 믿는다.
그런데 한국 천주 교회는 2백주년을 기념 하는데 있어서 여러 행사를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준비 중에 있는 행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는 기념 회의라는 전국 사목회의요 둘째는 교황을 모시고 열려질 전국 신앙대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진행 과정으로 미뤄 바서 결코 낙관만 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다. 사실 2백주년 기념 행사에서 무엇을 어떻게 성취할 수있을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한편 지금 참으로 어두움이 깔린 사회 경제적 여건하에서 또한 무엇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희망하여야 할까? 우리는 그저 이것 저것을 희망할 것이 아니라 모든 하느님 백성의 결단으로 전국 사목 회의에서 뚜렷한 희망이 비전을 제시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진정 2백주년 기념 행사가 민족사와의 맥락에서 이 민족의 아픔과 아울러 희망을 함께 하며 예수의 부활이 우리 역사를 희망을 위한 시대로 만들어주고 있다는 것을 교회도 증명 하여야 할 것이다. 이 희망은 하느님이 미래에 그 닻을 내리고 있으며 또한 예수를 일으키신 그 미래의 힘에 닻을 내리고 있기에 말이다.
이 미래는 한국 교회와 민족의 지난 날의 미래 이기에 우리는 과거의 성취를 미래로 기대해 보는 것이다. 부활의 희망은 우리들에게 앞을 보라고 지시하는 보이지 않은 것,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을 주는 것이다.
교회의 설립자 예수는 부활하셔서 이 땅의 낮은 곳, 소외 지역에 나타 나셨는데 오늘날의 우리 교회는 어디에 있는가? 그 성교회는 마치 이 세상 재물에 부유한 교회의 자신적 거대화를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대단한 성장으로 간주하며 그 거대한 건물 안에 있다.
그러나 참교회는 그리스도가 계신 그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생명 속에 그리고 작은 자들의 고난 속에, 현존하는 것이다. 교회를 본질상 교회 되게 하는 것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생명인 까닭에 외형적인 교회의 평가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잘못된 것이다. 정말 교회가 사회를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존재 하려면 부활 하신 역사의 예수의 관심사를 관심사로하고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그 곳을 찾아 가야 할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 믿는 자로 하여금 새로운 것을 향하여 우리의 미래를 활짝 개방 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그 미래의 힘은 예수의 부활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교 9세기와 아울러 21세기를 향하여 순례의 길을 걷기 위하여 오늘날에 있어서 예수 부활 사건의 현대적 의미를 알아 깨닫고 2백주년 기념행사를 통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성령을 신뢰하는 가운데 참여할 것을 다짐하여야 할 것이다.
부활의 희망은 개인적 경건에 집중하는 것도 아니다. 죽은자의 부활이란 새로운 세계의 일이며 그러기에는 이미 자상에 퍼져 있던 낡은 것에 만족치 않는 인간을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인간은 이 현대 사회에 대하여 올바로 메시지와 실천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도 하여야 하며 더구나 창조자 이신 성령이 오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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