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인가, 계획인가』
요즘 나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생각과 말」의 한가지다. 어떤 일에 부딪 쳤을때, 또는 어떤 일을 지나쳤을때 『이 일은 과연 우연하게 일어난 일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미리 계획된 일인가』를 곰곰 생각하게 되고 따라서 입 버릇 처럼 『우연인가, 계획인가』를 뇌까리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지난해부터 내게 닥친 몇 가지 변화에서 비롯 된다. 처음에는 전혀 우연하게 일어난 일로 믿어졌던 일들이 한 동안 시간이 흐른 뒤에는 『결코 우연 하기 만한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 되는 경우가 잇달았었다.
예를 들자면 그 중의 하나는 여의도에서의 만남이다. 그 날의 여러가지 일들을 두고 생각할 때 『이것이 과연 우연일 것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닌 「계획」이라면, 이 계획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는 무엇인가. 특히 십자가는…
개인적으로도 『우연인가 계획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일은 너무나 많았다. 심지어는 지금 이 시기에 이런 글을 쓰게된 것까지도 과연 우연인가를 생각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더욱 더 조심스러운 마음이 되는 것인지 모른다.
지난 해에 내게 있었던 일들 가운데에서 특기할 만한 일은 세밀무렵에 갑자기 이뤄진 이스라엘 여행이었다고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생 소원」쯤으로 열망하는 성지 순례를 나는 취재의 임무를 띤 공무(公務)로 손쉽게 다녀올 수 있었다. 그것도 사전 준비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처럼 평소에 열망을 품고 있었던것도 아닌데, 다만 뜻하지 않은 명령이 떨어져서 허겁지겁 혼자서 달려갔다가 달려 왔던 것이다.
성지에서의 경험은 한마디로 표현하면 곤혹(困惑)이었다. 상상과 실제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런 가운데도 내가 가진 성서지식의 부족이 더욱 당황 스러웠다. 좀더 준비를 했을 것을, 좀 더 공부를 헸을 것을 생각하면서 바쁜 일정에 쫓기다가 문득 생각한 것은 『아, 이것은 내게 공부할 기회를 갖도록 하자는 「계획」이 아닌가』하는 위안이었다. 이토록 귀중한 기회를 잡게된 것이 어떻게 우연한 일에 그치겠는가….
순례길에서 나는 몇 권의 참고도서를 샀다. 연재물을 쓰자면 남들이 먼저 써진 여행기를 참고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었다. 그리하여 많은 책들 가운데 가장 대중적이고 쉽게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볼프강 팍스)를 읽어 나가던 나는 한 대목에 이르러 정수리를 맞은듯 깜짝 놀랐다.
이 책의 저자는 그리스도 예수의 행적을 그려나가고 중요 대목 마다에서 『우연인가, 계획인가』(Chance or Design)를 거듭 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예수와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동시대인이 었다는것 조차 우연이 아닌 「계획」이며 아무런 인연이나 연관이 없는 그 밖의 무수한 인물과 사건들이 사실은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 아니겠느냐는 추론이었다.
그것은 잘못 해석하면 결정론(決定論)이나 인연론(因緣論)에 떨어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성지순례에 즈음해서 내가 집중적으로 경험한 여러가지 일들은 나로 하여금 『우연인가 계획인가』를 끊임 없이 묻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계획」의 경험은 바로 은혜였다.
이스라엘에서 돌아와서 연재 중인 성지순례기는 『일간 종합지로는 모험』이라는 예측을 깨고 그런대로 예정했던 횟수를 채우고 있다. 나는 이 은혜에 대하여 감사한다. 모든 것이 우연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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