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교회 안과 밖에서 일어났고 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정황은 우리의 신앙에 거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물음을 근원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 정황에서 우리는 현대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은 양립하는가? 라는 물음을 내걸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없다. 이 사회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신앙에 충실 하려고 하면 할 수록 이와 마주 대립하는 가치관에 맞 부딪쳐 그 만큼 위기감이 육박해 오기 마련이다. 주의 사회와 자기 신앙을 조화 시키지 못함으로써 그리스도인인 자신과 현대인으로서의 자기와의 분열을 경험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정황에서 어떻게 해야 참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가? 또 우리에게 오구된 것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문제시 하여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이란 물론그리스도 예수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또 영원히 같은 분」(히브리13 ~ 8)인 그리스도와 존재 론적으로 일치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의 길을 이제 20세기 후반에서 정녕온 인류의 살길로 이해하고 증언 할 결심이 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민중을 위한 아편 따위는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로 죽음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응시하고 그 아픔을 마비시키는 대신 아픔을 체험케 하는 것이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를 그 내면의 모순을 그대로 받아 들이고 십자가에 달린 존재로서 죽음의 선고를 받은 자로서 자기를 이해할 때 신앙은 절대적 희망의 의미를 갖기 마련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합법적으로 고발당한 자들과 당연히 유조 선고를 받은 사람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한가운데에 있는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셨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성당을 왔다갔다 하는 평균신도(平均信徒)는 거의가 이기적인 안정과 평안 떄문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私事化하여 타인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충분히 걱정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많은 교회의 구성원들이 교회 경영이나 교회 外觀上의 활성화에 도취 되어 그 물량적·수량적 우세에 의지한 권력 시위적인 것이나 외형적인 경건에 유혹되어 어느 사이에 자기기만에 빠쳐 신앙의 근본과제를 소홀히 하게끔 된 것이 아닌가 한다. 오늘날의 이러한 신앙 상태를 좀 지나친 표현일지 모르나 사실 불신앙과 다른 것이 없다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정녕 이러한 신앙적 상황의 어디에 성서적인 것이 있느냐 말이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라서 사는 모습이 그곳 어디에 있느냐 말이다.
신앙은 결코 단순한 종교적 정서라는 인간의 심적 상태는 아니다. 선의에서 비롯 되는 것이긴 하나 여러 신심 행사가 왕왕히 미신에 빠지고 광신에 날뛰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신앙은 결코 단순한 종교적 정서라는 인간의 심적 상태는 아니다. 선의에서 비롯 되는 것이긴 하나 여러신심 행사가 왕왕히 미신에 빠지고 광신에 날 뛰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함에 있어서 너무 폐쇄된 교회 중심 적인 생각과 아울러 개인적 차원에 사로 잡혀 사회와의 관련성을 추구 하는데 거의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신앙인은 모두가 항상 스스로의 신앙을 반성하고 정화 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역사상 예수에의 관심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어떻게 자신을 돌보지 않고 소외 되고 억눌리고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숙명에 참여하였는 가를 알게끔 한다. 사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신음하는 고통의 소리를 듣고 이에 손을 뻗칠 때 예수의 고통에 근거한 희망의 복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능동적인 고난과 고난 받는 행동으로서 이해하여야 한다. 고난받는 신앙이야 말로 『내게는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 없다』는 (갈라디아 6ㆍ14)고백을 하게끔 한다.
그리스도의 종인 우리는 주님이신 예수와 함꼐 똑같은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따라서 고통 속에서의 신앙만이 오늘날에 있어서 예수의 삶을 우리들 자신의 삶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하여 이 신앙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도전에 힘있는 응답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인을 구원 할 수 있는것이다. 한편 이 신앙은 어디까지 나 信仰의 遺産에 대한 책임과 現代社會에 대한 책임 그리고 또 自己自身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지닌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책임을 취하는 신앙만이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교회와 더불어 그리스도의 관심사를 옳게 살수 있게 끔한다. 정녕 신앙의 책임을 고통 속에서 수행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기도와 묵상을 성실히 하기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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