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다쳐보지 않고서는 그 상처의 아픔을 모르고 불구의 몸이 아니면 불구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없다』
나는 1939년 11월 10일 경기도 이천군 마장면 관리 927번지 천주교 집안 농가에서 태어났다.
네살 때 소아마비로 인한 양하지 장애로 동네 서당을 기어 다니면서 한문을 공부 했다.
여덟살 되던 해, 동네 친구들과 같이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양팔에 지팡이를 짚고 등하교를 할라치면 개구장이 친구들로부터 놀림을 받으면서 눈물로 어린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놀림을 받을 때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이 불구의 장애를 극복하리라 이를 악물었으나 그리 여의치는 않았다.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자랑 같지만 의지와 노력으로 중학교를 거쳐 농업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긴 하였으나 불구의 몸에 살길이 막막하기만 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살아보기 위한 일념으로 인장(印章)도 파보고 앙고라 토끼도 길러보면서 자립을 위한 몸부림 속에 꿈을 키워왔다.
본격적으로 나래를 펴보기 위해 양계(養鷄)사업을 구상하고 부모님한테 의견을 타진하여 보았으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쳤다.
그러나 나는 원래 성격이 외꿇이어서 하고 싶은 일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하지 않고서는 배기지를 못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고교를 졸업한 그해 초가을에 김장 배추를 심어 놓은 밭에서 달빛을 벗삼아 밤새도록 흙 벽돌을 찍어냈다. 토끼장도 짓고 양계장도 지어볼 심산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낮에 작업을 하면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칠 것 같아 야간을 이용 하였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부친께서 김장밭에 나가서 이 광경을 보고 오셨다. 아침 부친께서 김장밭에 나가서 이 광경을 보고 오셨다. 불호령이 떨어질 것으로 가슴을 죄고 있었더니
『김장이란 철이 있는 것이야 흙벽돌을 김장밭에 놓으면 되니?』
하시면서 예상외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 하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채 그저 용서만 빌었다. 나의 육신이 온전치 못하여 부모에게 누를 끼친다 생각하니 안스러울 뿐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첫 사업(?)은 이듬해 앙고라 토끼 78마리, 닭 50수의 곁실을 얻어 냈다. 불편한 몸으로 이들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면서 정성을 쏟는 기쁨을 큰 것이었다.
가축을 기르는 가운데서도 나는 틈틈이 앉아서 할 수 있는 이리에 곧잘 몰두 하고 했다. 부친께서도 한번 만들어 보신 적이 없는 멍석을 만들기도 하고 둥구리라는 어려운 것도 미끈하게 만들어 냈다. 동네 사람들은 한결같이 손 재주가 뛰어 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새끼 꼬는 솜씨는 동네에서 나를 당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
그러나 논밭에서 구슬 땀을 흘리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의 처지가 더욱 안타까와 지곤 하였다. 왜 나는 불구의 몸이 되어 농사 일을 도울 수가 없는가 생각 하니 미칠 노릇 이었다.
이렇게 번민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집 앞을 지나가던 어느 여자 분이 나의 모습을 보고는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한이 맺혀 있겠나』하면서 애조의 눈으로 쳐다 보았다.
이날 밤 나는 수만가지 상념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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