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내?그 말이 퍽 아름답다 했더니, 은하수를 가리키는 순수한 우리 말이기도 하다고 일러준다. 밤 만되면 이 계곡에 쏟아지는 별빛이 그렇게도 좋다고, 이곳에 살고있는 수사님은 덧 붙여 이야기 하신다. 말과 말뜻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미리내의 자연은 실제로 뛰어난 데가 있음에 감탄하게 된다.
진달래 꽃의 물결이 한바탕 지나간 뒤 였다. 고갯길을 넘어서 달려 내려오는 젊은 순례자들은 땀에 젖어, 그 얼굴이 더욱 싱싱하게 돋보인다. 이름 모를 산새들의 합창이 하늘의 음악인듯 간지럽게 들리는 한낮.
경당에 들어서면 우리의 수선탁덕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너무 짧았던 생애가 다시 한번 가슴을 친다. 그 분은 겨우 스물 다섯의 나이였다. 그런데도 그 분은 얼마나 의연하고, 얼마나 위대한 본을 보였던가. 특히 옥중에서 쓴 마지막 편지들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결당 결에 나란히 묻힌 두 무덤도 저마다 순례자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하나는 고 우르술라, 다른 하나는 이민식 빈첸시오. 고 우르술라는 김 안드레아 신부의 어머님이고, 이민식은 김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를 이 곳에 모신 장본인이다.
열 다섯살 난 아들을 중국 땅에 유학 보냈던 어머니는 그 아들이 사제가 되어 돌아왔을 때 의지할 곳 없이 떠도는 걸인의 신세였다. 기쁨도 잠시, 아들이 구금되고 드디어는 참수 치명하는 순간이 눈앞에 벌어졌을때, 그 어머니의 마음이야 말로 칼로 가슴을 찔린 성모 어머님의 통고에 견줄 아픔이었을것이다.
김 신부는 새남터 형장에서, 휘광이가 칼로 내려치기 여덟번 만에 참수 되었고 그 자리에 묻혀 관졸들의 지키는 바 되었다.
그러나 빈틈을 노리던 이민식에 의해 치명한지 40일만에 시신이 수습돼 밤길로만 이레를 옮겨져, 이민식의 선산인 미리내에 묻히게 된 것이다.『그것은 내 힘이 아니었다』고, 뒷날 그때 일을 회고하더라는 이민식의 신앙심은 지극히 감동적이다. 그는 사십이 넘은 나이에 사제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중국 땅을 전전하며 신학 교육을 받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우리의 교회사가 기억하는 자랑스러운 평신도상이 아닐수 없다.
미래내 성지는 등신대의 14처가 순례자로서의 분위기를 더해 준다.「예루살렘」의 비아ㆍ돌로로사가 예수님의 자취로서는 생생하다고 하지만,김 안드레아 신부의 무덤을 향해 가는 미리내의「십자가의 길」은 우리에게 훨씬 더 긴박한 실감을 주고 있다.
최근에 조성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명소도 있다.
겟세마니 동산. 미리내 성모상을 지나 한참을 올라간 곳에 여기저기 나 뒹구는 바위가 있고, 그 바위를 천연 그대로 이용하여 고뇌의 기도를 드리는 예수님과 잠들어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역시 실물대로 꾸며 배치해놓았다.
『아버지,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요. 그러나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 분은 이렇게 우리에게 기도의 표양을 보인다. 그런 표양을 따라 무릎을 꿇고, 우리의 순교 복자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복자들이 성인 반열에 오르기를 간구한다. 늦어도 교회 창설 2백주년의 해인 1984년이 되기 전에 적어도 김 신부를 포함한 한 두 분 만이라도 시성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는 것이다.
만약 시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들 후손의 기도가 모자라기 때문 일 것이다. 여기 누워「단 한시간도 깨어 있지 못한」제자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자고 있느냐?』
미리내에선 이런 말이 들리기 시작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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