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내밸은 한 여자의 동정 어린 한마디로 충격을 받은 나는 밤이 새도록 나의 인생 진로를 생각해 봤다.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의 이 부자유스러운 모습을 더 이상 부모님께 보이지 않는 것이 효도하는 것이라는 상념에 사로 잡혔다.
불구의 몸으로 시골에서는 살아갈 방도가 없다는 판단이 서고 보니 어떻게 하면 서울 로 올라가 살 수 있을까 하는 궁리로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부 자유스러운 육신으로 시골에 머물러 있어봐야 부모님에게 드릴 수 있는 것은 고통 뿐이라는 생각에 달하고보니 서울로 갈 생각밖에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찾으면 길이 있다고 했던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다보니 어머니 사촌 남동생 한 분이 서울 만리동에 살고계신다는 생각이 떠오르자 나의 가슴은 이미 서울 생활이 시작이나 된 것처럼 희망에 부풀었다.
어머니 사촌 남동생께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찾아 주소를 적어 놓고서 아버지 한테는 알리지 않고 어머니에게만 『서울로 갈렵니다』하고 말씀 드렸다.
나의 고집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는 알리지 않으시고 여비를 마련 해주셨다.
이렇게 하여 막상 서울에 올라와 보니 한편으로는 불안스럽기까지 하였다. 물어 물어 아저씨 댁을 찾았다. 그 동안 한번도 뵌 적이 없는 아저씨라 『제가 아무개택 자제 곽병준 입니다』말하니 『불구자가 있다고 하더니 너로 구나』하시면서 반가와 해주셨으나 웬지 서먹 서먹한 기분이 들었다.
아저씨가 『왜 왔니』하고 물으시기에 『시골에서는 살 수 있는 방도가 없어 서울에서 기술을 배우려고 왔습니다』하였더니『서울 사람도 기술 배우기가 어렵다』고 하시면서 며칠 놀다가 내려가서 더 크면 올라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의 말씀에 아랑곳 없이 이튿날 아침부터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이 없을까 찾아 헤매었다.
시골에서는 지게질 잘하고 힘이 세면 살 수 있지만 나 같은 장애자는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는 확신이 섰다.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만리동 고갯길 양화점 앞에서 구두 만드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앉아서 하는 것이면 나도 할수 있을 것 같이 보였다.
지팡이를 짚고 밖에서 정신 없이 쳐다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가게의 기술자가 이왕이면 들어와서 보라고 인심을 베풀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천금을 얻은 기분으로 가계 안을 들어 섰다.
『왜 그렇게 정신 없이 쳐다 보았니?』하시길래『저도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울수 없을까요』하고 되물었다.
그랬더니 천만 뜻밖에도 배울 생각이 있으면 내일 아침 9시까지 나오란다. 용산에서 양화점을 경영하고 있는 자기 친구가 처음 배우는 아이를 구한다는 것이다.
나는 틀림없이 취직이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아저씨 댁에 돌아와 아저씨에게 취직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튿날 아저씨와 함꼐 만리동 고갯길의 양화집에 가보니 예상대로 취직 이었다.
나의 첫 직장은 용산역앞 무허가 판자 가게 양화점이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