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 마당에 만국기가 걸렸다. 어렸을 적 국민학교 운동회날을 떠올리게 하는 흥분과 설렘이 있다. 본당이 큰 길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오가는 차속에서도 만국기 장식은 잘 보인다.
「본당 공동체의 날」이라고 쓴 플래카드도 큼직하게 걸려 있다. 「본당설립 15주년과 본당 공동체의 해」를 함께 기념하는 행사임을 알려 준다. 연후 이들을 하루는 성당에서 문화행사로 하루는 가까운 대학교 교정을 빌어 기념 미사와 체육대회로 보내는 것이 행사의 내용이다.
문화행사는 종합 전시회의 테이프 커팅으로 개막됐다. 강당에 마련된 전시회에는 본당 교우들의 「솜씨 자랑」수준의 미술 작품들과 본당 교우이면서 대가(大家)인 전문 예술가들의 본격적인 미술 작품이 어깨를 나란히하고 전시됐다.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본당 공동체」가 실감 될 수 있는 장면이다. 유화ㆍ동양화ㆍ조각서예ㆍ도예ㆍ공예ㆍ사진ㆍ꽃꽂이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크레파스 그림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망라 돼 『차려 놓고 보니 하루 전시로 끝내기에는 아깝다』고들 입을 모은다.
이어서 다른 장소에서는 본당내 40개 구역이 경쟁하는 교리 경시대회가 열린다. 어린이들도 아닌 어른들의 시험치는 모습은 자못 진지하다. 미리 고지된 출제 범위는 루까 복음서와 교리 교과서 그리고 최근 몇 달 동안의 가톨릭신문과 경향잡지 였다. 교회 안의 정기 간행물을 출제 범위에 넣은 것은 그들 신문 잡지에 대한 관심을 높이자는 뜻이 포함 됐다.
하오에는 성가 및 연도의 경연대회가 구역 대항으로 이어졌다. 채점의 기준은「참여도」가「실력」보다 우선하는 것이 특징이다. 응원단까지 가세해 박수와 폭소가 계속 된다.
한 쪽에서는 구성진 연도가 다른 한 쪽에서는 세련된 성가 합창이 한데 어울어진다. 참여도를 강조하다 보니 아예 전체 구역 반원을 총 출동 시켜「숫자」로 압도하는 팀도 있다.
이틀째 날은 주일이었다. 본당에서는 주일미사가 없고 마치 지난해 교구 신앙 대회처럼 운동장으로 모두 모였다.
이른 새벽부터 물려든 것도 그때와 똑같았다.
본당 설립15주년 기념식에 이어 기념 미사. 이어서 점심. 구역별로 모여서 「함께나누는 」뜻을 경험 한다. 그리고 나서는 구역을 가장 행렬을 시작으로 체육대회에 들어간다. 종목은 줄다리기를 비롯해서 병굴리기ㆍ공차기ㆍ2인 3각ㆍ병낚시ㆍ풍선터뜨리기ㆍ장애물경기ㆍ사람찾기ㆍ낙타와 바늘 등 제법 짜임새가 있다.
폐회식에선 체육대회의 성직 발표와 성가경연ㆍ연도경연ㆍ교리경시 등의 시장이있다. 끝내놓고 보니 상품이 각 가정별로 거의 골고루 돌아갔다. 원가 1백80원짜리 열쇠 고리에 불과한 기념품이지만 정성들여 만들었다. 정성들여 준비하고 정성들여 참가하고 정성들여 진행하는 사이에 공동체의 가족들은 모두 즐겁고 만족해한다. 일련의 행사의 지표였던 「주님안에 우리 모두 한 형제」가 실감을 더해 준다.
생각해보면 오늘의 도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은 스스로도 놀랍다. 사회 전체에 팽배한 불신과 의혹의 중앙을 어떻게 떨쳐 버리고 서로의 손을 잡을 수 있었는지 그것이 신기하다.
주택을 둘러싼 두려운 담과 그것도 모자라서 2층 3층으로 잠근 자물쇠 그것들보다 더 높고 더 견고한 것이 우리들의 마음인데 그것이 어떻게 이처럼 허물어져서 만국기로 펄럭이는 것인지.
담을 높이 쌓다 못해 가시 철망까지 두르고 그 속에 갇힌 것이 우리를 모두의 고질적인 자폐(自廢)증세 였는데 그것이 어떻게 꽃봉오리 벌어지듯 이처럼 열릴수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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