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우리 사목자들도 초창기 교회의 목자적 사랑을 본받아 신자들을 형제로서 사랑하고 존경하며 그들을 하느님의 한가족으로 결합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신자들도 목자를 육친의 부모 같이 모시고 존경과 사랑의 순명으로 받들어야 한다.』
이는 81년 10월의 한국 주교단 추계 총회에서 결의한 82년도 한국주교단 공동사목교서의 한 구절이다.
나는 우리 가톨릭에서 너무 나도 당연한 이 두마디가 어째서 새삼스럽게 주교단에서까지 강조됐는지 심사숙고해 보았다. 그리고 평신도로서 그동안 사제에 대한 자세를 깊이 반성 해보고 또한 나름대로 바라는 참다운 사제상도 생각해 보았다.
우리 평신도들은 주교단 사목 교서가 아니더라도 사제는 하느님의 대리자로서 그 높은 품격과 목자로서의 지위를 존경하고 받들며 오히려 부모 이상으로 순명함이 지당한 의무이다.
또한 신자들은 다른 종교의 어느 성직자보다도 사제의 특수한 신분적 환경을 이해하고 협조하여 만의 하나라도 존엄성을 흔들리게하는 자세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초상식일 것이다.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 우리교회는 많은 쇄신과 일치를 위한 사랑이 더욱 강조되고 사제와 평신도와의 관계에서 눈에 뜨이는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목자의 기본 지위와 사명 그리고 신자의 자세와 의무가 결코 병형 되었다고는 볼수 없을 것이다.
다만 초창가 교회에서와 같은 목자의 천상천하 유아독존식의 관념이나 평신자의 무조건 이유 없는 순종이라는 측면에서는 세대의 발전과 함께 한번쯤 재고해봐야 할 때가 왔지않느냐 하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절실하게 요구되는 사목자와 신도들간의 깊은 사랑의 일치와 친교를 이루고 그리스도를 한가운데 모시는 신앙의 참다운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도 반드시 요구되는 과제인 것 같다.
좀 외람된 말이지만 어느 사제가 교회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충정에서의 조언에 비위가 맞지 않는다 하여 목자로서의 품위와 양식을 저버리고 존경심으로 따르는 평신도에게 그것도 공연한 장소에서 원책적인 표현을 주저없이 썼다면 참으로 1백40만 우리 신자와 미래의 복음선교면에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물론 사제도 감정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미사때마다 그리스도의 모범인 사랑과 관용과 화해를 강조하는 사제가 나와서는 물리적인 표양을 보인다면 평신도의 설 땅은 어디에 있겠는가?
세상에는 자신을 반성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은 것이다.
이 현상은 지위가 높을수록 더 심하지 않은가 한다.
예수께서는 간음한 자도 일곱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번까지도 용서하셨다.
이 것이 곧 참다운 사랑이라 믿는다.
주교단 사목교서가 밝힌 대로 목사는 양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훌륭한 사제상을 견지하고 신자들은 목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려는 순명정신을 잃지 않을 때「본당 공동체의 해」는 실효를 거들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