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직장인 양화점 주인은 처음에는 밥 값이 안되니 6개월 동안은 집에서 양식을 갖고 와서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년이라도 그렇게 할수 있으나 기술만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하여 놓고 상경한지 3일만에 고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동네 친구들이『곽 대장, 어디 갔다왔느냐』면서 야단들이다. 이웃 동네와의 패싸움에서 곽대장이 없어 졌다면서 분해하는 것이다.
나는 비록 몸은 불구지만 전쟁 놀이를 좋아하여 대장 노릇을 도맡아 하였었다.
이러한 친구들을 보고 나는『이제 전쟁놀이는 끝났다. 내일이면 기술을 배우러 서울로 간다』고 말하니 친구들은 서운해 하면서 송별식을 마련 해 주었다.
『너는 서울에서도 훌륭하게 출세 할 수 있을것』이라는 친구들의 격려를 받으면서 여하한 고초가 있더라도 노력하에 인류 기술자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튿날 우선 한달 분의 양식과 침구 · 의복 등을 가지고 어머니와 함께 상경했다.
어머니와 함께 상경한 이 날이 바로 5월 8일 어머니 날이었다.
어머니는『아무쪼록 사장님 말씀 잘 듣고 몸조심하라』는 부탁과 함께 일년이라도 양식을 대어줄테니 열심히 노력하라면서 시골로 내려 가셨다.
그날 밤 전등불 아래서 라디오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생전 처음 들어본 라디오 소리와 시골의 등잔불 생각이 나면서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난생처음 부모곁을 떠나오니 쓸쓸한 생각이 엄습해 왔다.
나를 낳아 진자리 마른자기 보살 피며 키워온 어머님 사랑을 생각하니 목이 메여옴은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마음이 어수선 하였으나『내가 그토록 원하던 서울에 왔다』고 생각하니 다소 마음이 안정 되었다.
아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다.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를 깊이 생각 했다.
어떠한 장애물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인내로써 이겨 내겠다고 거듭 거듭 다짐 했다.
이러한 굳은 결심 하에 남보다 충실히 일했다. 한달 정도 열심히 일을 하니 어느 정도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다.
처음 6개월 동안 양식을 갖고 와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던 사장은 한 달 밖에 일을 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양식을 갖고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시골에 계신 어머니는 한달이 지나자 양식을 갖고 또 상경하신 것이다.
한 달만에 어머니를 뵈는 나도 모르게 한없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우는 내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는『네가 고생이 많은가 보구나. 시골로 함께 내려가자』고 하신다. 깜짝 놀란 나는 고생이 되고 서러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어머니를 만나 뵈니 기뻐서 우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사장님은 어머니에게『이 아이는 그렇게 착하고 성실할 수 없다』면서 나를 칭찬 하시며 앞으로는 식량을 갖고 오지 않아도 된다고 당부를 하셨다.
사장님은『내가 여러 사람을 고용해 보았지만 이 아이같이 착실한 아이는 드물었다』면서 거듭 나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사장님의 말씀에 시골로 내려가시는 어머니의 발길도 한결 가벼워지신 것 같았다.
상경한지 2개월만에 금의 환향은 아니었지만 휴가 차 고향 엘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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