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 잡지에 연재되는 역사소설(또는 TV · 라디오의 연속 사극)의 작가나 담당자는 종종 뜻하지 않았던 괴로움을 겪는다. 대개의 경우 그 괴로움은 종친회(宗親會)나 문벌(門閥)로 부터 온다.
본래 역사 소설(또는 드라마)은 소재를 사실(史實)에서 구하고 따라서 실재했던 인물들을 등장시키기 때문에 사실과 인물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두고 제나름의 이견(異見)을 갖는 독자(또는 시청자)가 많기 마련이다.
역사는 해석의 여지가 여러가지 일수 있는 것이고 더구나 소설은 본질적으로 허구(虛構)에 기초하는 것이어서 이견의 폭은 그만큼 넓어진다.
그러나 이 경우 종친회나 문벌이 작가나 담당자에게 가하는 압력은 그 강도(强度)가 전혀 다르다. 그들은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조상의 신원(伸寃)을 이루지 못할 것처럼 공격적이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 그들의 조상이 등장했을 경우는 두말할 것 없고, 앞으로 등장이 예상되는 경우에도 미리 엄포를 놓는다.
『아무 아무개를 만약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할 경우 큰일 날줄 아시요』하는식의 협박이다. 실제로 부정적으로 묘사 했을 경우엔 즉각 내용 증명이 날아들고 항의 공세가 치열해 진다. 작가나 담당자는 잘잘못을 따지기 앞서 노인들의 삿대질에 시달리고 지친다.
이른바 문벌 사학(門閥史學)의 폐단은 요 몇년 사이 우리 사회를 우울하게 만든 것이 사실이다. 수백년 전의 역사절 인물에 대한 평가나 갑자기 달라지고『그는 역신(逆臣)이 아니라 충신이었다』는 새로운 학설(?)이 발표 된다, 심지어는 수백년 간 공인돼온 공훈이 뒤바뀌기도 한다.
그중에는 물론 옳은 견해도 있을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라도 뒤늦게 사실이 광정(匡正)되고 새로운 평가를 낳는 다면 그것은 역사 연구의 한 발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들의 동기(動機)에 있다. 많은 경우 그런 일들의 뒤안에는 후손들이 도사리고 있고, 그런 후손들에 의해 조종(?)되는 문벌사가(門閥史家)가 있음을 본다. 어떤 경우엔 치밀한「작전계획」에 의해 그런 일들이 수행된다.
역사상의 인물, 위대했던 우리의 조상들 가운데는 동상(銅像)으로 재현돼 후손들의 존숭(尊崇)을 받는 분이 적지 않다. 그런 동상이 많아서 나를 까닭은 없을 것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동상을 세우는 일에 마저 문벌의 힘이 작용하는 경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실제로 동상 건립과 동상의 입지 선정에는 그 후손들의 열의와 권세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일부의 소문이기도 하다. 가문(家門)이 무엇이길래 그처럼 몰두하고 열광할 수 있는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하는 일이다.
필자는 이쯤에서 서울의 가장 대표적인 순교 성지인 서소문(西小門) 밖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이 곳에선 최초의 수세(受洗) 교인이 이승훈(李承薰)을 비롯하에 최필공 · 정약종 · 정하상 · 유진길 · 남종삼 등 무수한 평신도들이 치병했다. 순교복자 1백3위중에서 절반에 가까운 45위가 이곳에서 참수된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다. 어디 복자 뿐이겠는가.이름도 없이 이곳 서소문 밖 형장의 이슬로 되어 사라져간 무명 순교자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전국 곳곳의 형장에 순교자들의 피가 흐르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이 곳만큼 처절한 한(恨)이 맺힌 곳은 달리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정작 빗돌(碑石) 하나가 없다. 버젓한 공원도 조성되고 공원안에는 어느 장군의 동상도 서있지만, 우리 천주 문벌(?)의 후손들은 무엇을 하고있는 것인지 돌하나 세워놓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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