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때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보통 10진법이다. 10진법으로 굳어진 까닭은 잘 알려져 있다. 손가락이 좌우 다섯씩 모두 열이므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하며 셈을 하면 열을 고비로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게 돼 있어, 자연 10진법이 생겼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손과 발에 왜 다섯 개씩의 ‘가락’이 붙어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섯이라는 숫자가 필연인가, 우연인가?
손가락 발가락 말고 생각나는 ‘다섯’이란 숫자가 또 있다. 우리의 감각도 다섯, 곧 5관(官), 동양 철학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음양 5행설에서도 만물의 구성 요소가 금, 목, 수, 화, 토의 다섯이다. 이때에 다섯이란 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혹 다섯이란 숫자에 우주 만물의 구조와 운행의 원리를 푸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우리에게 감각의 영역 다섯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바깥세상인 우주로 나아갈 수 있고, 우주가 우리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통로’가 다섯 있다는 말이 된다. ‘통로’란 비유 말고 나는 또 하나의 비유 ‘창문’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 ‘창문’은 보통 창문이 아니다. 빛깔이 서로 다른, 아름다운 색유리가 끼워져 있는 다섯 개의 색유리 창문이다.
감각의 세계는 특색이 완전히 서로 다른 독자적인 영역이다. 시각(視覺)의 세계는 얼마나 화려하며 눈부신가. 소리의 세계는 얼마나 깊고 장엄한가. 향(香)의 세계는…. 그러면서도 이 다섯 영역은 인식체계 안에서 완전히 하나로 조화돼 있는 통일체다. 우리가 파악하는 우주의 그 깊고 다양한 모습에 우리는 넋을 잃을 정도다.
우주라는 물질적 환경 안에서 생명을 얻어 환경에 순응해가며 또한 환경의 어려운 조건을 극복해가며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삶, 곧 인생이다.
인생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나온다. 어떤 인생관은 딴 인생관과 가는 방향이 비슷할 수도 있고 정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자기의 관점과 주장만이 인생의 모습 전부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우리 삶에서 물질의 구실이 필수적이며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바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물질이 인생의 전부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독선이요 오만이다. 한때 기승했던 이른바 ‘유물론’ 또는 ‘유물사관’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또는 이른바 심층심리나 잠재의식이 우리 행위의 상당부분을 타당성 있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심리가 인간 행위의 모든 것을 다 해명할 수 있다고 과신한다면 이것 역시 황당한 생각이다. 인생은 여러 원리적 요소들이 복잡하게 조화(調和)돼 있는 그런 것이다. 어떠한 주장도 들어맞는 측면이 반드시 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지어낸 어떠한 거짓말도 ‘오냐. 오냐’ 하며 받아들일 정도로 존재의 수면(睡眠)은 깊다.
인생의 어려움은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데 있다. 인생은 뜻으로 보느냐 허무로 보느냐 하는 문제도 결국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
인생을 한 번 긍정하는 쪽에서 보기 시작하면 갈수록 뜻의 심연이 열린다. 인생의 모든 것이 긍정적이며 희망적이다. 고통조차도 인생의 뜻을 깊게 하는 요인(要因)이다. 인생은 양지바른 동산이다. 방긋 웃는 손자 손녀의 미소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깊은 뜻의 심연인가.
반면에 한 번 허무에게 사로잡히면 ‘허무신(虛無神)’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워진다. 실상 허무가 준비하고 있는 매혹의 품목(品目) 또한 얼마나 다양한가.
인생은 그 자체가 뜻이랄 수도 허무랄 수도 없는 것이며, 내가 열어나가는 그것이 바로 ‘나의’ 인생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이 30살이 조금 넘어서 우여곡절 끝에 결연히 허무의 진영을 박차고 나와서 뜻 편에 뛰어들었다. 그 이후 나의 인생은 지그재그로 나아가긴 하지만, 그 방향은 결국 빛 쪽이요, 생명 쪽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