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 보조원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듬해 75년 국가 고시가 있어 시험에 응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합격의 영광을 알았다. 더구나 4대1 경쟁을 이 불구의 만학이 뚫은 기쁨은 큰 것이었다.
한동안 감격의 눈물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5층에 있는 학원 사무실까지 올라가노 라면 코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힘겹던 수업이 꿈만 같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올랐다.
또 하나의 자그마한 목적을 달성하고 보니 과연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다.
제화 기능공, 치과 기공사, 간호 보조원 등 나에게는 과분하기나 한것 같은 자랑스러운 나의 분신들이다.
어느 정도의 나의 목표가 계획대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나는 평소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 해 온 지체부자유자들의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체부 자유자들이 어떻게 하면 이 사회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나의 능력으로 이 문제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부질 없는 짓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맞부닥치기 시작했다.
궁리끝에 76년 8월 15일 지체장애자 복지 문제는 장애자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보자는 발기문을 지체장애자들에게 우송했다.
이러한 취지에 호응하는 동료들이 늘어나면서「금십자가회」라는 우리들의 모임이 결성되었으며 나는 이 회의 대표로 열심히 뛰었다.
여러가지 어려움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회원 확보에 주력한 결과 79년 3월에는 회원수가 1백 86명으로 서울 시내의 많은 지체부 자유자들이 회원에 가입, 열심히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모임으로 커갈수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하나 마련 못한 우리들의「금십자가회」는 아쉬운대로 우리 집에서 모임을 갖다 보니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가정집에서 모이다보니 횔체어를 탄 회원들은 여간 불편하지가 않았다. 이곳 저곳 야외의 적당한 장소를 찾아 모임을 꾸려오다보니 별다른 진전은 기대하기가 힘들었다.
다시 궁리끝에 나는 혼자서 지체 장애자들을 위한 기술 양성원을 설립키로 결심했다.
80년 2월 1일 도봉구 상계1동 1138번지에 한국 지체장애자 기술 양성원이란 간판을 내걸고 장애자들을 모집했다.
기술양성원을 설립한 나의 목적은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후배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하는 일념 뿐이었다.
누가 도움을 준 것도 아니다. 나의 노력과 집념으로 이루어온 기술과 나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결심, 우선 제화와의 수족 기술을 가르치면서 공장을 운영했다.
사회는 정말 냉정하다. 부자유스러운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려면 운전 기사는 빨리 떠나고 안내양은 불친절하고 차 안에서는 넘어지기가 일쑤고 취직을 하려면 거절 당하기가 여반장이고, 비가 오면 우산을 쓰기가 힘드니 옷이 비에 젖기는 당연한 일이며 눈이 오면 중심을 제대로 못잡아 넘어지기가 다반사이다.
이러한 고통은 당해 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가 힘들 것이다. 정상인이 느껴보지 못하는 시시 각각의 아픔 속에서 남 몰래 한숨 짓는 것이 장애자들의 서글픈 현실이다.
이러한 감정이 진정 나만의 의골스러운 생각일 것이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