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내게로 올 때/나는 침을 뱉었고/떠나갈 때/붙잡았다. 너는 아름답다고」
이렇게 시작되는 시를 읽는다. 제목은「詩」다.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도 시인의 진실은 무언극 보듯 실감난다.
시인은 십 여년만에 써본다는 신간 시집의 후기에서『지난 세월 내 살아온 꼴을 한 눈에 보는 것 같다』고 대견해했다. 이어『마당에 붓꽃이 새싹을 내 밀었다. 새싹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고「치악산밑」의 근황을 전했다.
시집의 제목이 된 권두의 시는 또 이렇게 시작된다.
「신새벽 뒷골목에/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지 오래/내 발길은 너를 잊은지 너무도 너무도 어래/오직 한가닥 있어/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시집 한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린다. 시인의 恨과 고뇌가 저릿저릿하게 전달되어 온다. 시인만이 아니라 독자의 가슴도 아프다.
시인의「시와 진실」을 생각하다가. 뛰어난 신문 경영인이었고 영원한 문학 청년을 자처했던 백상 선생의 유명한 기자훈(記者訓)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늘『신문기자는 시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덧 불여서, 미래의 신문은「시와 그림만으로 가득한 신문」일 것이라 예언 했었다.
그가 기자들에게 시인될 것을 요구한데는 몇 가지 함의(含意)가 있겠으나 요컨대 진실에 용감하고 글을 잘 써야한다는 독려(督勵)의 뜻이었을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테면『기사를 쓰되 시인이 시를 쓰듯이 진실하게 써라』『언어를 갈고 닦아라』『절제하라』『아름다워라』등등.
그런데 신문이란 것이 사실은 이사회에서 일어나는 온갖 어지러운 일들을 바쁘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지러운 일들을 표현하는 신문기사의 문장은 본질적으로「산문적」일 수 밖에 없다.
신문 기사는 그래서 샅벌하고 거칠고 수다스럽다. 제작 시간에 쫓기느라 어떤 때는 어법도 맞지 않는 것이 그대로 인쇄 되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기사가 시적(詩的)이기는 처음부터 힘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에게 시인 되기를 요구하고 시 쓰듯 신문 기사 쓰기를 희망한 백상 선생은 욕심이 지나 쳤던 것 일는지 모른다. 아니면, 그런 저런 사정을 알면서도 시를 내세우곤 했던, 바로 그 같은 엉뚱한점이 그의 비범한 일면을 보여주는 것 일는지 모른다.
시는 말을 아끼고 절약 하는데서 시작 된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긴말 보다는 짧은 말이 진리를 설명 하는데는 더 적합한 법이다. 집약적이고 용축된 말은 아름답기까지 하며, 정곡을 찌르는 논리의 비수는 언제나 짧은 한마디 말 속에 숨어 있음을 본다. 설명적이고 수다스러우면 핵심은 흐려지게 마련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기도와도 통한다. 가장 훌륭한 기도는 훌륭한 한편의 시가 된다.
기도에 관한 수많은 정의 중에서 최민순 님「입 그림」이라는 표현은 절제와 응축의 표본이다. 그 말 자체가 훌륭한 시로 느껴진다. 신문 기사 역시 시나 기도에서 처럼, 절제와 응축을 통해 진실을 표출해야 한다는 것이, 백상 선생의「기자시인론」의 뜻이었을 것 같다.
시와 기도와 신문기사.
맨 끝의 신문 기사를 동렬에 놓은 것은 끝내 시인이 못된 기자의 투정일 뿐이다
이 글의 동기가 되어 준 우리의 시인에게 청하건대, 이 다음에 펴낼 책은 우리의 시인 만이 쓸 수 있을「기도의 시집」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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