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3일은 침묵의 북한 교회를 위한 기도의 날이었다. 또한 오는 6월 25일은 32번째 맞는 6ㆍ25의 날이다. 우리 교회는 이날 꼭 북한의 침묵 교회를 위해 기도를 해왔다. 사실 한국 천주교회는 국토 분단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몸 일부를 절단 당한채 그 아픔을 지니고 있다. 오늘의 이 순간에도 이 땅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을 두 동강으로 짤리운 채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느 면에서는 교회 사상 가장 생동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할수 있을지 모르나 만일 그렇다면 그럴 수록 북한의 침묵 교회가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여 아픔을 나눠가져야 할 신앙의 책임이 있다.
오늘날 북한에서 밖으로 나타나지 않게 마음 속에서 몰래 가정에 숨어서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하는 결단의 사정을 잘 인식하고 또 말로는 형용 할 수 없을 만치 전체 군주 이상으로 민중을 통제하고 있는 북한의 폐쇄된 사회에서 엄한 감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도 알지도 못하고 날마다 신음하고 있는 동포를 기억하며 말씀의 기쁨과 성령의 위로를 보내는 일에 남한의 한국 교회가 얼마나 사목적 배려를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만 하다.
물론 북한의 침묵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말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0년 10월 23일 「바티깐」에서 한국 주교단을 접견한 자리에서『이 순간 뭣보다 제 생각은 북한에 살고 있는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 특히 계속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또 그에 대한 믿음 때문에 시련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로 향합니다.
모쪼록 그들이 결코 잊혀진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라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이어서『없는 사랑과 결속의 보증을 보냅니다. 제가 이 세계 앞에서 그들에 대해 얘기할 때 저는 그들을 「우리가 바라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게 베풀어 주실 수 있는」(에페소3ㆍ20)하느님의 희망 속에 맡깁니다』라고 우리 주교들에게 말하였던 사실을 상기하여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 하느님의 백성들은 북한 침묵 교회외「대리적 수난」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함께 생각하고 이북 동포들의 무거운 지을 나누어지고 그 고난에 동참하려는 복음적 열의를 보여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은 끊임없는 기도에 의해서 그들을 기억하고 또 항상 새로운 방도를 모색함으로써만 복음적 형제애를 실현 할 수가 있다. 그렇게 하는 일에 의해서 기도와 동포의 구원이라는 것의 참 의미를 새롭게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는다.
주님이신 그리스도는 인간 삶의 가장 비참하고 어둡고 특히 버려진 장소에는 언제든지 꼭 계신자하여 우리 그리스도의 백성들은 38선의 경계를 넘어서 북녘땅에 그분이 현존 한다는 것을 믿고 있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북한에서 고통가운데 살고 있는 그리스도의 백성들과 아울러 침묵의 교회와의 동행을 결심하여야 하겠다.
특히 교회 창림 2백주년을 맞으려는 이 싯점에서 왜 오늘날까지 북한에 교구를 명목상이라도 그대로 두고 교구장이 임명되어 있는지 하느님 앞에 무릎을 끊고 참회의 정신으로 성찰하여 보는 것이 참으로 뜻깊은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는 통일문제 따위는 정부차원에서나 다를 것이지 교회가 간여할 것이 못 되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듯 별로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 같지 않다.
이른바 부분 교회로서 한국이라도 이 땅에서 이 겨레를 위하여 존재하는 그리스도의 교회이기에 이 민족의 가장 큰 과제를 등한시 한다면 이야말로 남북분단이라는 비극적 현실 속에 살고 있는 이 땅의 백성과도 별로 관계 없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이 잘못 일까?
본질적으로 교회는『하느님과의 친밀한 사귐과 전인류의 깊은 일치를 표시하고 이루어주는 표지이요 도구인 까닭에(교회헌장1)』또한 간단히 교회는『일치의 성사』인(전례헌장26) 까닭에 한국 민족의 일치를 위해 통일 문제에 적극 관심을 쏟아야 함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의 하느님 백성이 복음을 오로지 私事化하고 신앙의 책임을 민족적 차원에서 혹은 사회적 차원에서 벗어난 개인 주의 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때 그 개인을 위해서 나 교회를 위해서나 反福音的이라는 불행을 초래케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하느님의 백성들은 개인적 문제에나 배타적으로 집중하기 보다는 민족적인 사건들과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 인가를 찾고 그의 관심사를 성실히 실천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교회가 복음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가운데 끊임 없는 기도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는 그리스도가 진리와 정의와 사랑의 숨은 창조력이며 그 당당한 창조력을 가지고 개조하고 분쇄하시는 분임을 믿기에 화해와 일치에 의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는 구원의 힘이 땅에서 드러내도록 파견된 자의 사명과 책임으로 북한의 침묵교회와 동포에 대하여 관심을 쏟고 늘 기도하며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데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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