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장애자 직업재활원 운영을 위해 나는 나의 주택을 정리 했다.
한 채 밖에 없는 집을 팔고 나니 가족들 조차 갈 곳이 없어 우리집 식구들은 재활원에서 함께 생활해야만 했다.
수도물도 나오지 않는 비좁은 공장에서 원생들과 함께 추운 겨울을 지내자니 아내와 자식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서하는 고생이라 하더라도 아내와 자식들에게는 미안하기 짝이 없었다.
국민학교 5학년에 다니는 큰 아이는 그동안 전학을 세 번이나 하고 보니 학교 성적도 좋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이토록 팔자가 기구한가』하는 탄식이 절로 나곤 했다. 여기서 좌절 할수도, 해서도 안된다고 이를 악물곤 했으나 이 위기를 이겨내기란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러나 지금 처해 있는 나의 어려움과 고통은 역경을 이겨낸 수많은 선현들에 비기면 하잘 것 없는 어려움이라 생각하니 조금씩 마음의 평정을 되 찾을수가 있었다.
추운 겨울에도 아침 6시면 공장에서 제작한 구두를 챙겨 청계천 도매시장에 나가려면 빙판에 넘어지기가 다반사였다.
5층 계단을 오르 내리자면 영하 15C의 날씨에도 내복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나곤 했다.
정상인 이라면 5층 계단을 오르 내리기는 가벼운 운동일수도 있겠으나 지체가 부자유스러운 나에게는 암벽을 타는 기분 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행히 수금 실적이라도 좋으면 힘든 줄 모르고 일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기진 맥진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별다른 희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루 하루를 보내기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다.
그해 겨울에는 김장 준비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 웠다. 걱정만 하고 있을 때 아내의 친구들이 와서 많은 원생들을 보고『김장이라도 많이 해야 한다』면서 김장 거리를 사다가 담궈주기까지 했다.
사회 사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피부로 체험할 수가 있었다.
답십리본당 신우회 회원들이 방문하여 원생들에게 성경책을 나눠주고 재활원을 위해 연탄을 지원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곽 베드로 형제에게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빕니다』 면서 기도까지 해주어 나와 원생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심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도움을 입으면서도 겨울을 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식생활마저 힘들어 하루 하루를 견디어내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그럭저럭 겨울을 나고 81년 3월에는 공장 사정으로 안암 3가 132번지 산 언덕에 셋방을 얻어 아내와 아이들을 이사 시켜 오랫만에 가정을 다시 이루었다.
4월 초에는 표창장 수상자라면서 신원 조회가 있었으며 4월 16일에는 문화 방송에서 재활원의 모습을 촬영하는 등 유엔이 제정한 장애자의 해를 맞아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 했다.
문화 방송에서 취재해 간 4월 16일 밤 9시 뉴스 시간에 우릴 재활원 공장에서 로울러스케이트를 생산하는 장면과 나의 인터뷰 모습이 방영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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