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이면 성당 마당에서 혼자 놀고 있는 너 댓살 나는 남자 아이를 자주 보게 된다.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낮이면 혼자가 되어 온종일 직장에 간 부모를 기다리고 있는 그 아이가 안되 가끔 간식을 주고 같이 놀아 주기도 한다. 그래도 그 아이는 묻는 말에 대답을 할 뿐 별로 말이 없다. 친해 보려고 장난을 걸어도 흥미있게 접해 오지 않는 아이다. 성격 탓인지 번번이 혼자서만 놀고 있다.
일전에 본당 교우가 신출이라며 자두 한 봉지를 사왔다. 그 날도 그 아이는 무엇인가 중얼거리며 혼자서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불러 자두 몇 개를 주었다. 그 아이는 기뻐서 오른손을 내밀어 받아 쥔다. 다시 몇 개를 집어주니까 오른 손에 쥐고 있던 자두를 왼 손에 옮겨 쥐고 오른 손으로 또 받아 쥐었다. 나는 주는데 재미가 나서 또 몇 개를 집어주니 그 아이는 왼팔은 배에다 붙이고 그 위에다가 오른 손에 쥐었던 자두를 한 개씩 한 개씩 올려 놓더니 오른손으로 또 받아 쥐었다. 어찌하는가 보고 싶어 또 몇 개 집어 주니까 그 때에는 받고는 싶은데 받을 데가 없어서 활짝 개였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안타까운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아이때로부터 거의 한정이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씁쓸했다. 제것을 남에게 주려는 마음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지마는 남의 것을 내게 받아들이려는 욕심은 얄미울 지경으로 한정이 없나 보다. 터무니 없는 울음을 터뜨린 그 아이의 얼굴속에 나도 예외는 아니라는 자책에 얼굴이 화끈 달아 오른다.
나이를 먹어가며 자신이 누리고 있는 의식주나 특혜에 대해서 스스로 끊임 없는 양심의 매질을 가하는데 게을러지고 있다. 어둠에 빛으로 살자던 등대지기 삶에 때때로 피해 의식도 느낀다. 죽어도 손해보며 살기가 싫어지기 때문이다. 한 때에는 소설을 읽고 나서도 놀라워 눈물을 글썽이며 혼자 편히 살고 있는것 같아서 죄스럽기까지 했던 고운(?) 마음이 나이를 먹어가며 이토록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눈하나 깜짝 않고 거드름을 피고 남보다 내 감정을 조금이라도 더 드러내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재고 달고 튕기기가 일쑤다. 까짓것 손해 좀보면 어때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받아 들이지 못하는 형벌 같은 생활에 젖어있는 것일까? 그러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설명하고 희생과 봉사를 설교하는 내자신의 행방을 가늠해본다.
역 앞 지하도에 웅크리고 앉아 손을 내민 노파, 심하게 병든 다리를 내놓고 동정을 구하는 걸인들, 심지어는 추운 겨울날 내의를 벗어 젖히고 엊그제 난 갓난 아기를 부등켜 안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앞에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쳐 버리는 내 행동은 언제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걸까? 가짜 학생들의 껌판 돈이 그네들 왕초한테 간다는 것을 알지만 속아주며 도울수는 없는가? 이웃에 대한 내 노력이 헛된 것이고 낭비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진정한 인간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좀 더 너그러울 수는 없을까?
그리스도의 생애와 죽음은 우리 눈에는 분명히 적자로 나타났다. 하지만 적자 인생을 통해 증명해 낸 그리스도의 사랑과 승리의 부활은 무엇으로 설명 되어야 할까. 손해 좀보며 살아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이 행동으로 나타날 땐 반드시 피와 땀이 지출 되어야 하는 법,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랑이나 봉사라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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