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속담에『꼴에 수캐라고 다리들고 오줌 눈다』는 말이 있다. 되지 못한 놈이 건방지게 나서서 젠체하고 수작함을 이름이다. 요즘 아이들이 흔히 얘기하는「주제 파악」이 덜 되었다는 뜻일 게다.
이솝 우화에 이런 얘기가 있다.
『어느 농사집에 나귀와 수탉이 같이 살았다. 하루는 나귀와 수탉이 뜰에서 놀고 있는데 무서운 사자가 울타리를 뛰어 넘어 들어왔다. 이 사자를 본 나귀는 이젠 죽었구나! 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수탉이 이 사자를 보고 놀란 김에「꼬끼요오」하고 소리쳐 울자 이 소리를 들은 사자는 멈칫 물러서서 몸서리를 치더니 그냥 울타리 밖으로 뛰어나가 도망을 쳤다.
이를 본 나귀는 기운이 나서 백수의 왕인 사자 뒤를 쫓아 가서 혼을 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달아나는 사자뒤를 정신 없이 쫓았다.
이를 눈치챈 사자는 뒤 따라오는 나귀에게 와락 달려들어 물어 뜯는 바람에 졸지에 나귀는 사자의 맛있는 도시락이 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런 나귀 같이 주제 파악이 안된 신자들이 교회에 있는건 아닐까?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대가로 세워진 교회는 예나 지금이나 죄인들을 받아 들인 것인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치 못한 나귀 같은 의인들만의 교회는 아니다. 이러한 교회의 참 모습을 제2차「바티깐」공의회는「지상의 나그네」「순례중인 교회」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외인들만의 교회라는 인상을 너무 질게 풍기고 있다. 때로는 회개할 줄 모르는 교회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꼴에 짐스럽고 쓸모없는(?)사람을 제쳐 놓는다면 죄인을 위해 죽음으로써 세우신 그리스도의 교회는 무슨 소용이 있을까? 세례 성사나 고백 성사를 받은 신자라해서 회개할 것이 없다는 건 아니다. 내심은 끊임 없이 이겨내야 할 수 많은 어두움과 죄스런 요소를 여전히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도 예의 없이 부단한 회개를 필요로 하게 된다.
회개할 줄 모르는 신앙 생활은 죽은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할 줄 모르는 의인들을 호되게 꾸짖으신다. 위선적으로 단식과 안식일을 지키며 또 위선적으로 기도 하고 자선을 베푸는 (마태오 6장) 의인들을 신랄하게 책망하신다. 이 같은 위선적 의인 사상은 그리스도 교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며 올가미다. 자신의 죄스런 입장을 인정하기 보다는 이웃을 판단하고 비난하며 교회 밖에 사람들을 죄인으로 물기에 급급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신앙의 참 생명은 뉘우침에 있는게 아닐까?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가 친히 죄인이 되시어 십자가상에 죽으심은 자신들이 뉘우치라함이 아니었던가? 이러한 까닭에 십자가를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먼저 자신의 참모습을 보며 더 없이 가난한 자신을 부끄러워하고 울줄을 알아야 한다. 결코 이웃의 십자가를 지느라 허덕 일 게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나 죽기까지 지고 가야 할 것이며 언제 어디서라도 자신의 십자가를 벗어 놓으려 해서는 안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 소이다』라는 내면적인 우리의 침만이 위선적 의인 사상을 벗어나는 길이며 하늘을 향한 순례의 첫 걸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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