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루르드」에 다녀온 감명을 쓰고싶습니다. 「루르드」의 아름다움ㆍ성스러움, 「루르드」의 깨끗함과 보람율 여기에 적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이 곳에 유학온 뒤로 「루르드」에 한번 가야겠다고 생각을 해오다가 며칠 전「빠리」에 올라가 서울가는 친구를 전송한 길에 결단을 내려 곧장「마르세이유」로 밤침대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마르세이유」에서 하루밤을 묵고 11시간을 달려 聖地「루르드」에 도착 했을 때는 저녁 9시 40분인데도 어두웠습니다. 이 곳의 여름은 저녁 10시가 돼야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마침 제가 도착한 날은 구름이 짙게 깔리고 부술비가 자욱하게 내리고 있어서 그랬던가 봅니다.
비를 맞으면서도 참례객들이 줄을 이었고 저는 입구의 대형 십자가 앞에 서서 잠시 기도한 뒤 유명한 그 동굴로 다가 갔습니다. 많은 행렬이 동굴의 바위를 어루만지고 입맞추고 지나가길래 저도 그 행렬의 꽁무니에 붙어 섰습니다.
불은 대낮 같이 밝았으며 촛불은 찬란하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밑에 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끓고 있었습니다. 바위는 따뜻했고 수많은 손과 입이 지나간 그대로 반들 반들 했습니다. 샘물도 마셨습니다.
「聖母無染始胎」, 그것을 읽고 다시 성당을 돌아 달리다시피 해서 호텔로 돌아 왔습니다. 11시까지는 호텔문이 열려 있으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주인의 말 때문 이었습니다. 그리고 밤 새도록 앓았습니다. 11시간 동안의 기차 여행은 힘 겨웠으며 끼니를 제대로 챙길 수가 없었기 때문인듯 했습니다.
그러나 아침은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호텔 식당에서 빵 하나와 커피 한잔으로 때우고 다시 聖地로 갔습니다. 이번엔 좀 더 자세히 보자고 말입니다.
저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말로 낮은 목소리로 말하면서 혹은 열을 서고 혹은 인도하는 신부님이나 수녀님들과 함께 옹기종기 모여서곤 했습니다. 머리가 까만 사람은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
곳곳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맨 앞에는 병자들이었고 그들은 들 것에 실려와 있거나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참배객들은 거의 굻어 앉아 있었고 신부님 여러분이 미사를 집전 했습니다. 은은한 성가와 알렐루야 합송은 숲속에 성스럽게 퍼져 나갔으며 태양은 밝고 성모상과 교회당의 높은 종탑은 엄숙하게 빛났습니다.
저는 다 돌아보았습니다. 기자적인 호기심의 발동도 있었지만 이 광경이야말로 제가 새겨두어야 마땅하다는 진한 감정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도 크게 말하지 않고 아무도 웃지 않고 아무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이상한 눈으로 타인을 보지 않는「기원에의 동참」이 아름다왔고 그래서 저는 문득 눈시울이 젖어옴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감동의 차원을 넘어서는 이상한 감격이었습니다. 지하에 매소에 들렀다나와 저는 집으로 5프랑 짜리 동전 하나를 넣고 전화를 했지요. 『나는「루르드」에 와있다!』는 것을 알리려고…10초만에 전화는 끊어졌읍니다만 지구를 반 바퀴돌아 전해지는 저의 목소리에 전 자신이 먼저 격했습니다.
하루를 더 머물면서 끊임없는 저 대열과 피레네 산맥의 높다란 산과 그 산 밑 숲속의 아담하고 거룩한 성전에 아담하고 거룩한 성전에 참례 하면서 이국의 외로움과 쓰라림과 울분을 씻고 싶었으나 「보르도」까지 3백프랑이면 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그래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 다음 어려울 때 다시오면 그때는 더 많은 것을 자각할수 있겠지. 그때는 버스를 타고 피레네까지도 갔다 오자」하면서 저 혼자 마음을 달랬습니다.
호텔 주변 기념품 가게에서 우리집 아이들수대로 온 십자가와, 마리안나를 위해선 조그마한 손 지갑 하나, 스무장 가까운 기념 엽서를 샀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은 당장 현실로 돌아와 신문한 장과 파이프 하나를…. 「뚤루즈」까지 가서 열차를 바꿔타고「보르도」까지 올라 오는 동안 저는 내내「루르드」를 생각 했습니다. 그 풍경과 사람들의 왕래 하던 모습을. 대부분이 늙은 부부들이고 꽃다운 처녀와 성직자들도 더러 보였던, 그 확고 하고도 너그러운, 그러면서도 간절한 기구를 간직한 눈빛들을 생각 했습니다.
강물은 聖域을 감돌아 힘차게 흐르고 커다란 십자가와 높이선 聖母像. 숲은 사방에 푸르게 반짝이면서 모든 세속적인 것들을 차단하고 있었으며 거기로 들어 오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세계를 보장 해 주었습니다. 그 물을 마시고 몸을 씻으면 모든 병이 사라진다고 해서 참례객들이 반드시 찾는 샘물도 막대한 양의 물을 쏟아 내면서 바위 속에 있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 특히 치명적인 병마와 싸우던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 몇 달 며칠이고 머무는 것은 희생의 기적을 이룩 하려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죽음의 세계, 영원한 삶을 확인하러 온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읍니다. 그것은 마음의 평정과 준비 같았습니다. 깐깐한 논리로서만 살아온 저 서구식 논리의 머리와 자기제어로 무장된 사람들이 죽음에 임박하여 구하는 것은「펑정」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하고 저는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루르드」를 저혼자 가본 것이 아닌데도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제가 느낀 감동의 폭을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차기 때문입니다.
설사 저의 감동과 충격이 여린 신앙심에서 나오는 것이라 할지라도 소중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의 바캉스가 다가기 전에「빠리」에 올라 갔다가 서쪽 해안 지방을 타고 내려와「루르드」를 다시 갈 작정입니다. 그때 또 편지를 쓰겠습니다. 천주님의 은총이 우리 교우들에게 골고루 내려주시기를 멀리서 빌겠습니다.
프랑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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