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있다. 고백성사를 준다는 일이 아직도 나에겐 그리 상쾌한 일이 못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한번도 고백성사가 된 일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단지 천편 일률적인 고백을 들어야 하는 일이 짜증스럽고, 축제 전야가 되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고백자들을 대할 때마다 여러가지 모양으로 곤혹을 치뤄내지 않으면 안될 경우가 허다하다.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것 같은 고함 소리를 억누르다 보면 골치까지 직근직근 아파 오기도 한다. 지도 죄를 사하는 자동식 기계가 되고 만다. 때로는 대중 목욕탕의 때밀이처럼 느끼기도 한다. 영세 후 영신적 상처를 고치기 위한 고백성사는 그리스도와의 우정을 회복한다는 점에서「평화의 성사」이며 죄에 죽었다가 다시 새롭게 살아난다는 뜻으로「창조의 성사」라고 불리우기도 한다. 그런데 힘차게 살아 움직여야 할 성사가 자동 기계화 되고 부활의 신비 속에 참회와 화해의 기쁨이 담겨져 있는 고백성사가 부담스럽고 짐스러운 것으로 전락되어 많은 신자들이 이미 담을 쌓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자기를 낮추는 일이긴 하지만 자신을 죄인으로 겸손하게 인정하지 못하고 변명을 하거나 자신의 잘못을 정당화 하느라 구구한 얘기들 늘어 누으며 격에도 맞지 않는 점잔을 빼려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마치 목욕탕의 때밀이에게 아무런 수치심도 없이 습관적으로 자기 몸을 내맡기 듯 때를 벗겨내는 일에 철저한 수동 자세를 취한다.
제 몸에 낀 때를 벗기는 것이 귀찮은 귀족(?)들을 위해 공중 목용탕이면 으례 서너명 씩 있게 마련인 때밀이와 안격적 유대를 나누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단지 때 민 수고 값으로 돈 몇 푼을 주는 것으로 깨끗이 끝나 버린다. 그 이상의 관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 길 가다 서로 만나게 되어도 무표정이다. 뭐 창피하게 목욕탕 일을 들러서 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신에 관계되는 일이 바로 이와 비슷한 습성으로 침해받고 잇는가 많은 것다. 문제가 되는것은 바로 「청부 목욕」자체가 아니라 목욕탕에서의 장면이 인물과 배경만 바뀌어 재현되고 있는 고백소에서의 소극적인 마음자세다. 목욕탕에서의 게으름이 고백소에까지 이어지고 잇는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성실한 삶을 갈아가려는 결심도. 뉘우침도 없이 기계적으로 기울 것 외우고 지난 번 고백을 녹음이라도 해두었는지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그대로 암송을 한다. 그리고 사죄경이 끝나기가 바쁘게 돌아서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고백성사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성사라는 것이 본래 보이지 않는 형태로. 구체적으로 「지금」「여기에」실현 하는 것 일인데 돈만 가지면 쉽게 때를 밀어 버리는 목욕탕의 때밀이와의 관계 일수나 목욕탕으로만 착각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너」와「나」의 인격적 만남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며 이러한 고백성사는 돼지에게 던져진 진주일 뿐이다.
고백 성소는 죄만 닦아 내는 목욕탕이아니라 내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는 이용소이가도 하면 자신의 행방을 가늠케하는 올바른 이정표 이기도 하다. 더 나아 가서는 나의 전 실존을 그리스도께 던져 넣는 거룩하고 엄숙한 곳이다.
돈을 주고 쉽게 때를 밀어내는 목욕쯤으로 고백성사를 대하는 신자들이게는 내일의 고백도 넌센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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