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偏愛)를 받는다는 건 그 반대의 경우만큼이나 불편하다. 가령 이 쪽이 미우니까 저쪽이 곱다는 식의 사랑은 사랑이 아닌거고, 네가 좋아서 모두 싫다는 논리도 가당 찮으며, 다 좋지만 네가 더 좋다는 열정도 입맛에 썩 달지않다. 하물며 종교에 있어서 그런 감상은 자못 위험 신호 아니겠는가?
그냥, 뭐가 뭔지 모르지만 어떤 위력을 알아 보고 겸손히 다가왔고 아직 머리 들지 못하는 자세로 자기를 가만히 가만히 가늠해보는 그 수줍은 얼굴이 보고 싶은 얼굴이다.「아직 아무 것도 모르지만」이 말을 시작부터 끝까지 가슴에 낙인처럼 뜨겁게 지지어 간직하고 더욱 머리 숙이며 더욱더 목소리 낮추며 더욱더 바지런히 아집을 비워내며 매몰찬 자기 매질을 쉬지 않는 얼굴이 하느님 그 분을 마주할 얼굴 아닐까?
요즘 부쩍 가톨릭 교세가 확장된다고, 안 그러던 사람까지 어깨 들썩, 목소리 높직해서 괜히 나는 누구를 만나면 저 눈빛에도 혹 그런 열기가 보태진 건 아닌가 훔쳐 보며 혼자 가슴 조일때가 더러 있다.
물론 좋다. 거둘만큼 씨가 뿌려졌고 썩어 준 밀알 많았다. 이제 깃발 높이 들고 문 밖가지 합창 소리 힘 올려 펴져 나가도 뭐가 어떻겠나? 빈자와 억눌린자의 천진 어깨를 껴올려 함께 어깨 동무하고, 키 없는 배가 이건 웬 닻줄에 엔진이라도 걸린 듯 천방지축 요동칠 때 칼 빼어 한을 한을 쇠줄을 끊어 내는 그얼도 그 힘도 눈물 겹도록 우리를 기쁘게 한다. 매양 서먹하던 이웃이 기웃 기웃 갑자기 인사 치례 하는것도 우리를 얼마쯤 우쭐하게 한다.
『제가 종교를 갖게 된다면 가톨릭 교회를 택하겠어요』
자못 단호한 경우도 만난다. 그런 경우 웬지 나는 『그럼요! 좋죠!』라고 쉽게 두손 맞잡아 흔들 수 없다. 대신에 참지 못하고 되 물어 놓고 만다. 『왜요? 왜 하필 가톨릭 교회를?』
사실 이 물음 속엔 내 욕심이 가득하다. 내가 원하는가, 가톨릭교회가 원하는, 하느님이 원하는, 그런 대답을, 즉 싹수가 보이는 대답을 바라는 나의 방자스런 허욕이 부끄럽게 자리해 있다.
『그냥 조용하고…바른말 하는 사람도 많고…』 『네에ㅡ그렇게 다가 오십시요.』
결국 우리 둘은 서로 욕심을 감춘다.
가령 이러면 좋을 텐데. 아주 좋은데.
가톨릭 교회가 유독 조용해서도, 칼을 빼어든 신부님에 매혹 돼서도, 나환자촌 주변의 감명 때문도 더구나 자기의 목전 욕구 충족을 위한 하나의 방편도 아닌 그냥 하느님을 향하여 시선 못박고 나온다면 그는 참 행복 할텐데. 그러면 설혹 가톨릭의 침묵이 변형 되더라도, 간혹 수도자의 납득할 수 없는 처사에 부닥치더라도, 자기가 원했던 금시발복이 더디더라도 그는 비교적 덜 놀라고 덜 낙담하고 덜 초조하므로 훨씬 쉽게 길들여질텐데.
다시 말하지만 물론 우리식구 느는거 좋다. 자기 영혼 구하려고, 뭐가 참 목마름인지를 알아 내고 꾸역 꾸역 모여든 형제가 얼마나 이쁜가? 기존 성당이 그들을 다담아 안지 못해 좀 헐떡거리면 어떤가?
다만 나는 제자리 지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때로 이들의 편애가 불편함 속에 흑종의 기우도 그늘 지어져 있다.
기실 금 송아지는 어디서부터 튀어 나올지 예측 불허 아니겠는가?
나를 지키기, 기도처를 지키기, 하느님을 지키기, 그리고 흔들리지 않기, 편애에 들뜨지도, 얼뜨지도 않기, 맹물이 듯, 잊혀진 인형이 듯, 채인 돌맹이이 듯 「나」를 좀 나직이, 나직이 간직하기, 저아래 아래에서 기도마저 침묵으로 삼켜내기.
결국 나는 욕심이 많은가? 이건 혹 나의 편애벽에 기인한 건 아닐까? 그래도 한마디 더 보탠 다면, 교회 인구 증가는 전천후 적이어야 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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