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빠가 술에 취해서 밤 늦게 귀가했다. 엄마는 귀따갑게 바가지를 긁었다. 아빠도 지지 않고 그럴 듯한 변명과 함께 엄마에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러다가 아빠는 냉수 한 그릇을 달라고해서 벌컥 들이키고는 골아 떨어졌던 것이다. 엄마는 하도 아빠가 미운 나머지 마시다 남은 물그릇을 치우지 않았고 자기도 그대로 잠이 들고 말았다.
새벽녘에 아이가 잠을 깼다. 오줌이 마려워서였다. 아이는 윗 목에 놓인 요강을 찾다가 그만 물그릇을 엎질러버렸다. 그 일 때문에 이 집안에선 새벽녘에 야단 법썩을 떨었다. 아이는 엄마가 왜 물 그릇을 치우지 않았느냐 하며 따졌고 엄마는 엄마대로 그건 아빠 때문이라면서 왜 당신이 밖에서 술이 취해가지고 들어와서 냉수를 달라했느냐고 아빠에게 또 바가지를 긁기 시작하는가 하면, 아이에게도 너는 조심없이 왜 가만히 놓여 있는 물그릇을 엎질렀느냐며 야단을 쳤다. 그 때 아빠는 또한 아빠대로 아이한테『이 놈의 자식, 괜히 자다가 일어나서 물을 엎질러놓고는 무슨 잔소리냐』했으며, 엄마한테는 물 그릇을 치워 놓았으면 되었을 것을 이게 무슨 소동이냐고 호통을 치는 것이다. 그러자 아이는『엄마도 아빠도 다 나빠!』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것은 필자가 상상해 본 한 토막의 픽션인데 만일 이러한 집안이 있다면 얼마나 불행할까? 이와 반대로 어쩌다가 아빠가 술이 취해 들어와서 냉수를 마시다 놓아둔 물 그릇을 아이가 엎질렀을때, 엄마는 그 물 그릇을 미처 치우지 못한것은 자기 잘못이라했고 아빠는 그게 아니라 내가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온 것이 잘못이다 했으며 아이는 아이 대로『제가 잘못했어요. 물은 제가 엎질렀잖아요』했다고 하자 그것은 얼마나 흐뭇한 이야기이겠는가?
사람들은 너무 자기에겐 후하려하고 남에겐 박하려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은 에와에게, 에와는 또 뱀에게 자기 책임을 전가하고 있듯이 어쩌면 인류는 그와같은 약점을 누구나 다 공유하고 있는지 모른다. 남들은 다 그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다. 잘못은 다 남에게 있는것이지 나에겐 조금도 잘못이 없다.
있다면 이렇게 흔히들 자기 변명 아닌 자기 변호를 하고 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신 후 한 마디로『좋더라』하신 하느님 이심에 그러한 하느님에게다 책임 전가 아닌 책임 회피를 우리들은 곧 잘하게 된다. 이 세상이 각박해지고 조악해진 것은 결국 따지자면 우리 인간의 탓인데, 그러나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네 탓이다, 남의 탓이다, 누구 누구의 탓이다, 하고 자기를 쏙 빼 놓는것이 옳은 일일까? 자기 결백만을 주장하다보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그러면 결국 현재의 결과는 누구의 탓이 되어야 할 것인가?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고백의 기도를 할 줄 아는 우리 가톨릭 신앙인들마저 세상 만사를 결코 자기 탓이기는 커녕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는 경향이 너무나 많다.
고백 성사를 주시고 있는 신부님들의 입에서 곧 잘 들을 수 있는 말씀이 너무 핑계를 많이 댄다고 한다. 하긴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한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은 없다고 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탓이라는 생각을 가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 신앙인들만이라도 진실로 자기탓이라는 생각으로 겸험하게 충직하게 살 수 있게 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 지금까지 인천 제물포본당 주임 이신 이수일 신부님께서 수고해주셨읍니다. 이번 호부터는 진주 봉곡본당 신자인 이재기씨께서 집필해 주시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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