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소사 본당에 30대들의 모임인「서른빛」이라는 단체가 있다.
사람의 나이 서른이 되면 사회서나 직장에서나 한창 일할 때이다. 그런데 유독 성당에선 30살만 되면 올때 갈 때 없는 고아(?)신세가 되고 만다.
20대면 합창단, 주일학교교사, 40대나 50대쯤이면 각종 단체에서 활동 할 수 있으련만 30대는 갈 길이 오묘하다.
이래서 본당 신부님의 뜻으로 만들어진것이 일명「서른빛」모임이다.
다른 본당에도 30대 모임이 없는것은 아니다. 「성우회」「영우회」등 단체가 있기는 있다. 그러나 우리 본당이 이 모임에 이름을 구태여「서른빛」이라 함은 어떤 형식이나 묶음에서 탈피해보자는 의견에서 내 고집(?)으로 지은 것이다.
그런데 이 서른빛들이 지난해 극성을(?)부려 주위 사람들의 박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마당극「놀부뎐」을 공여 한 것이 바로 그 것이다.
온 종일 직장에서 시달린몸으로 저녁 7시쯤이면 서른빛들은 어김없이 모여들었다. 물론 마당극「놀부뎐」을 연습하기 위해서이다.
한 쪽에선 대사 외우는 소리, 또 한쪽 에선 장구에 맞추어 덩실 덩실 춤을 추는 연습, 또 다른 사람은 생전 처음 써 본다는 탈을 쓰고 열심히 표정 연습에 여념이 없다.
한바탕 연습을 하고 나면 등줄기로 흐르는 땀은 겨울을 무색하게 하리만큼 냇물(?)이 되어 흐르기가 일쑤였다. 서른빛들은 구태여 시계를 볼 필요가 없다. 담배 한대 피울 시간도 없다. 그저 장단에 맞추어 춤추고 판소리로 대사 외우기에 시간 가는줄 모른다. 12시가 넘어 집에 가는 것은 보통이었다.
드디어 공연날이 왔다. 서른빛들은 어른 답지 않게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다. 국민학교 때 학예회 무대에 처음 서는 것 만큼 떨리었다. 사람은 어른이 되어도 동심의 세계로 돌아감은 어쩔수 없는 것인가 보다.
첫 공연은 연습과 같이 되지를 않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는 아주 잘했다. 그 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누는 소주잔 마다 큰 웃음소리가 가득차 있었다. 다시 한번 삶의 기쁨을 느낀다는 사람도 있었고 앞으로 연극을 계속 해보자는 사람도 있었다.
이윽고 서른빛 모임의 마당극「놀부뎐」은 이웃 본당에까지 소문(?)이나 결국에 초청 공연의 영광을 안았다.
이웃 본당으로 공연을 갔던 날, 무슨 유명한 극단 배우나 된 것처럼 들뜬 마음들, 정말 인생의 환희를 만끽하고 있었다.
이번엔 양로원 위문 공연을 하게 되었다, 벌써 세번째 공연-. 구경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들은 흥에 겹던지 그만 무대까지 올라와 춤을 같이 추기도 했다.
이렇게 서른빛 모임들은 마당극「놀부뎐」으로 추운 한 겨울을 불태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누가 시작하자고 한 것도 아니다. 서로의 주머니를 털고 서로의 박봉을 털고 해서 만들어 겨울을 불태운 「놀부뎐」-.
아마 이는 몸으로 나마 신앙을 좀 더 다져보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은 부지런하고 뜻이 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벌써 올해도 무엇인가 해서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들먹거린다.
「서른빛」모임.
뜻있는 곳에 길이 있겠지
■ 지금까지 진주 봉곡동본당 신자이신 이재기씨께서 수고해주셨옵니다. 이번호부터는 시인이며 부천 소명여중교사이신 구자룡씨께서 집필해주시겠읍니다. <편집자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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