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늦게 들어 온 애 아빠가 내게 내미는 것은 뜻 밖에도 영문으로 된 성경책 이었다. 화려한 금박으로 책 표지를 장식하고 앨범만한 부피의 책장 속엔 중요 사건들을 주제로한 칼러 판 명화가 끼워있으며 신약 부분에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부분을 붉은 글씨도 인쇄해 놓고 있었다.
『이왕 읽으려면 공부도 되게 그걸로 해』
영문을 몰라 하는 내게 그가 던진 말 이었다. 나는 그의 저녁상을 차리면서 여러 가지 궁금한 이야기를 참고 있었다. 그 귀중한 책을 어디서 구했고 값은 얼마나 되며 무엇보다도 그가 성경책을 사게 된 까닭 등.
그의 마음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쪽으로 생각 하고 싶어 하면서 나는 끝내 궁금한 말을 묻지 않았다.
그가 쑥스러워하고 행여나 심술 부리지 않을까 두려웠으므로, 식사를 하는 그의 옆에 앉아 나는 열심히 책을 들여다 보며 그를 칭찬해 주고 그가 좋아할 말들만 골라 내는 궁리를 하고 있었다.
참으로 어려운 일들 이었다. 반강제로 그들 이끌고 관면 혼배를 받았고 그를 속이며 아이들을 주일학교에 보내었다. 너무나 괴퍅스런 그의 성격을 미워 하였고 어느 땐 남편을 잘 꼬시어 내는(?) 여자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다가 얼마 전부터는 모든 것을 주님의 섭리에 맡겨 드리었다. 그의 구두를 닦을 때나 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 할 때마다 그의 영혼을 위해 맘속으로 간구하였고 미사를 올리거나 묵주기도 중에는 가장 많이 그를 기억 하고는 하였다.
그 동안 그에게는 약간의 변화가 있어 나는 활발히 주일 미사에 다녔고 아이들도 영세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미지근하지 않고 차가운 그의 태동에 조그만 위안을 느끼기도 하였다.
주일날 혼자서 외출하고 돌아와서는 성당에 갔다오는 길이라며 비양거리고 새벽 미사에서 복사하고 돌아오는 작은 아이에겐 구제품도 안주는데 뭣하러 잠도 안자고 다니냐며 핀잔만 주는 그였다.
그리하여 나는 주님의 섭리하심을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러더니만 느닷없이 성경책을 오다니…
식사를 마친 그는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잠든 아이들방에 들어가 차버린 이불을 다시 덮어준다.
오늘밤 좀처럼 잠이오지 않을것 같다. 혹시 꿈에서라도 그에 대하여 좋은 징조를 볼수있지나 않을까. 내일은 통신 교리를 신청해볼까.
언젠가 세상뜨기 전까지는 그를 불러주시겠지하고 있었는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열절한 느낌이되어 마음을 모은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시 나이까?』 (시편 8·4)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